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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아보고 싶어

털보아찌 2008. 10. 16. 23:07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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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 할 거야 이 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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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 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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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엔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뜰 거야

백화점에 가서 잿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베이지빛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빛 실크 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갈까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 장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두어야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난 푹빠져 잠이 들겠지.

 

  나 늙으면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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