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야! 일어나야지......
윤희야......
전 지금 하늘 나라에 간답니다.
엄마를 내려다 보고 있는데 엄마가 절 보며 일어나라고 일어나라고
제 볼에 엄마의 눈물로 얼룩진 뺨을 부비고 있답니다.
저도 엄마 말처럼 빨리 일어나고 싶어요...
근데....
몸이 말을 듣지 않네여....
몸이......
오늘도 역시 짜증 나는 하루였다.
집구석에 들어와봤자 이번 장마로 얼룩진 곰팡이 핀 벽지와 어제
하나뿐인 동생놈이 먹다 남긴 양은 냄비 속 라면 찌꺼기만이
날 반겨주고 있을 뿐.....
어느 것 하나 맘에 드는게 없었다.
"에이~ 씨~"
가방을 방한켠에 날리듯 집어 던지고 영은이네 집으로 놀러가기로 했다.
영은이네 집은 버스를 두번 갈아 타야 할 만큼 우리집에서 꽤나 멀지만
난 영은이네 가는게 그 어느 곳 가는것보다 즐거웠다.
영은이네 아버지는 변호사에다 어머님은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고개를 움추릴만한 대학의 교수님인데 언제봐도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만약.....
나와 영은이가 일주일만 아니 하루만이라도 몸이 바뀌어진다면...
이런 상상을 하는것도 나에겐 꽤나 흥미로운 일과중 하나였다.
그에 반해 우리집은 재개발지역이라 친구들을 데려온적이 한번도 없다.
친구들이 물어보때면 늘 난......
"어...우리집에 오늘 친척들이 많이 와 계시건든...담에 놀러와!"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야! 정윤희 너희집은 매번 친척들이 와 계시니?"
난 대답 대신 어설픈 웃음으로 친구들의 질문을 막아내며
또 한번 내 환경을 탓 하기에 바빴다.
엊그저께는 동네 반장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디가 와 재개발 문제를
이야기하며 종이를 펼쳐보였다.
"윤희 엄마! 여기에 적어야 되는데.....윤희야 볼펜 있니?"
엄마는 늘 그렇듯 얼굴이 빨개진채로 날 쳐다보신다.
남들이 말하는 까막눈이라 글씨를 못 쓰는 엄마를 대신 해 내가
우리집 주소와 몇가지 기재사항을 써 내려갔다.
"얼구! 우리 윤희 글씨 잘 쓰네...윤희 엄마 그럼 또 올께.."
엄마는 날 다시 한번 쳐다 보신다.
난 그런 엄마가 싫다.
"윤식이 자식 오면 매달려서 글 좀 배워! 챙피하게 언제까지
내가 이런거 써야 되는데?"
찬 바람을 일으키며 곰팡이 핀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말이 내 방이지 방도 좁은데다 옆집 떠드는 소리까지 다 들려
방에 있기조차 싫은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난 다른 세상에 있는것 같은 영은이네가 좋다.
영은이네는 일 하는 아주머니도 계신데 머리 스타일이며 옷 입는
행색이 집에 계신 지지리도 못난 우리 엄마를 보는것 같아 짜증이 난다.
영은이는 마치 자기 종이라도 되는양 거만한 말투로 아주머니에게
사소한것 까지 시키는데 나에게도 시켜보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괜찮어! 우리 집에서 일 하는 아주머니야! 물 좀 달라 그래봐!"
"아니 그래두....."
"괜찮대두 기지배...해 봐!"
"저기....아주머......아니...다..다음에...."
내가 입을 씰룩 거리며 주저하는 기색이 보이자 영은이는 깔깔대고 웃는다..
그런 영은이가 미우면서도 그 보다는 아주머니의 초라한 행색이
날 더 화나게 만들었다.
이런데 일 한다고 저렇게 입고 다니니까 영은이가 깔보잖아여?
비록 입 밖으로 내 뱉진 않았지만 내 맘은 그렇게 말 하고 있었다.
영은이네 집에서 방을 뒹굴다 시걔를 보니 벌써 9시가 훌쩍 넘어가 버렸다.
"영은아! 나 집에 가봐야 할것 같얘..."
"어? 그냥 자구 가면 안 돼?"
"아니..그래두 가봐야 하는데...."
"너희 집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드라...내가 전화 해 줄께..."
"아니...."
"993-77**"
영은이의 손가락은 이미 버튼에 가 있었다.
강아지 머리털을 쓰다 듬어주다 신호가 갔는지 영은이가 입을 열었다.
"여보세여?"
"여....보...시..요..."
"하하하!!! 잠깐만여.."
어머니와 통화가 됐나본데 갑자기 웃고 있는 영은이....
"하하하! 윤희야! 이 아줌마 누구니?
말도 잘 못해! 하하! 너희 일 하는 아줌마야?"
"응?"
"일하는 아줌마냐고?"
"응....."
"야! 말을 왜 이리 버벅대냐? 웃겨 죽는줄 알았다.
네가 말 해 아줌마한테 오늘 못 들어간다구...."
"어?"
"뭐해?"
"어..."
"여보세요..."
"여..보..시요...윤희냐?"
"예...아줌마...저 윤흰데여...
엄마한테 저 오늘 친구집에서 자구 간다구 전해주세여...."
"여...보..시.."
탈칵!
난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가슴이 뛰고 있었다.
내가 뭘 한거지.....
야! 정윤희 너 지금 뭐라고 전화한거야!
영은이네 집에서 강아지와 놀았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엄마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려 이미 마음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영은아!"
"어?"
"나..깜빡했는데 오늘 우리집 제사거든......"
"누구?"
"어....우리 할아버지.."
"너희 할아버지? 할아버지 제사 저번 달이라고 그러지 않았어?"
"아이..기지배...그냥 내 제사라고 쳐!"
"하하!!"
"나 집에 가 볼께...또 놀러올께.."
영은이가 몇번 더 붙잡았지만 엄마가 맘에 걸려 집 밖을 나오고 말았다.
현관 앞에서 일 하는 아주머니가 나에게 인사를 해 주는데 눈물이 나올뻔 했다.
나도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린 후 골목길을 내려 뛰기 시작했다.
건널목.......
파란불이 깜빡거린다.
내 심장도 쿵쾅거린다.
가방 쥔 손에 힘을 한번 준 후 달리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이 건널목을 건널때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웬지 한번 건넌 후 뒤를 쳐다보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싸늘한 느낌.
건널목 중간쯤을 내 달리다 뒤를 한번 쳐다보았다.
후후! 뭐하는거니? 정윤희 암것두 없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밝다.
아주 밝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불빛.......
내 몸은 공중으로 붕~ 뜬 후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가방을 잡으려 손을 뻗어봤지만 마음과 달리 손에 힘이 없었다.
앞쪽으로 나를 치고 간 커다란 회색 덤프트럭이 심하게 급 브레이크를 그제서야......
그제서야......
밟는다.........
엄마가 날 보며 운다.
날 보며 우는 엄마를 보며 난 이야기 했다.
엄마! 울지마......
울 사람은 난데 왜 엄마가 울어?
난 엄마에게 글 하나도 제대로 못 쓴다고 짜증만 내고.....
쉰 김치만 싸 준다고 짜증만 내고.....
심지어는......
아까 엄마와 통화를 하며 일 하는 아줌마라며 엄마를 속였는데..
이런 나쁜 년을 보며 엄마가 왜 울어.......
내가 아무리 이 애기를 해도 이 못난 년을 위해 목 놓아 우는
우리 못난 엄마는 내 얘기를 듣지 못 하나 봅니다.
난 목이 터져라 이야길 하는데......
위에서 내려다 본 엄마의 머리 위엔 흰 눈만이 가득.......
나같은 못난 딸을 위해 새벽 청소도 마다하지 않았던 엄마의
머리 위엔 어느새 할머니마냥 흰머리가 가득 했습니다.
엄마....내가 잘못했어....
이러말 해 봤자 소용 없다는거 알지만......
날 위해 울지마......
더 이상 엄마 눈물 나게 하는 못난 딸년 되기 싫으니....
날 위해 울지마........
이제 가야 할 때가 됐나봅니다.
엄마를 볼수 있는 시간도 이제 마지막입니다.
스물도 안 돼 죽는건 억울하지 않지만......
엄마가 글씨 못써 쩔쩔 맬때 이제 엄마 대신 써줄 사람이 없다는게.......
그래서 엄마가 얼굴이 빨개진채로 서있는 시간이 오래 된다는게 그게 슬퍼집니다.
엄마......
나 이제 가야 돼거든.....
만약 다음 생에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엄마 딸로 다시 태어나서......
그때는 지금처럼 철 없는 윤희가 아닌 엄마에게 자랑스런 윤희가 될께.......
알았지?
엄마!
울지마.......
울지마..............
제발 날 위해.................
울.....지.....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