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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으로

털보아찌 2009. 2. 16. 07:50
아침에 어김없이 깨우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고함소리다.
"XX야, 일어나"
그러면 꼭 탁상시계를 봤다.

지금에는 시계가 흔했지만 내 어릴 적에는 이 시계 하나밖에 없었다. 이 시계야 말로 우리집 보물 중에 보물이었다.
이 시계를 보며 일어난 필자는 물을 먹지만 부자동네 아이들은 일어나자 마자 병 우유를 마신다. 그 병우유 마시는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래도 필자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것은 어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따뜻한 도시락

먹을 것이 변변치 못한 시절이라 따뜻한 흰밥과 김치 몇조각이 전부였던 도시락이지만 그 어느 음식보다 맛난 것이 바로 이 도시락이었다.
내 동생은 옆에서 학교갈 준비를 하면서 교과서를 챙겼다.
철수와 영희 그리고 바둑이가 나오는 그 교과서.(참고적으로 영희의 원래 이름은 영이였는데 어느때부터인가 영희로 바뀌었다)

형은 옆에서 열심히 가방을 싸면서 회수권을 챙겼었다.


이것 기억하는 사람 있는가!!
이것이 있어야만 버스 회수권을 구입할 수 있었다.
버스 회수권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문방구 아저씨도 군것질거리 파는 아줌마도 이 회수권 하나면 모든 것을 주셨다.

우리때 교복이 사라졌지만 형은 교복을 입고 등교했다. 등교길 버스는 항상 콩나물 만원사례였고 버스 안내양은 꾸역꾸역 태운 뒤 버스를 탕탕 쳤다. 그러면 버스 운전사 아저씨는 출발을 했고...
회수권이나 돈이 없는 학생들은 버스 안내양에게 많이 혼나기도 하고 일부 남학생은 안내양에게 추근덕 거리기도 했다.
그때는 학교에서 갖고 오라는 것도 많았다.
그중 자연시간이면 꼭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전지와 전구

원리는 그때 잘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꼬마전구에서 불이 번쩍 하고 들어오면 마냥 신기해 했었다.

샤프가 없던 시절 연필은 아이들의 영원한 벗이었다. 또한 부잣집 아이들은 연필깎이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연필깎이를 가지고 잇는 아이를 무척 부러워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연필을 칼로 깎았다.

이 칼 기억하는 사람 있는가?!!
이 칼로 연필을 사각사각 깎으면 내 마음의 부정한 것도 깎이는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때 당시에는 이름표에도 사상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멸공, 원호, 쥐를 잡자 등...

이 시간이 그리 싫었던지...
부자집 아이들은 육성회비 카드에 도장을 딱딱 찍었는데 일부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선생님께 혼나기도 하고 부모님께 혼나기도 하고...
양쪽 사이에서 곤란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책받침 한쪽 구석을 잘라서 놀던 바로 그 야구게임이다.
모나미 볼펜끝으로 책받침 자른 부분을 톡하고 튀기면 책받침 잘라진 부분은 멀리 혹은 짧게 날아가 안착을 한다. 그러면 아웃 혹은 안타 혹은 홈런이 된다. 이렇게 쉬는 시간을 보냈다.
방과 후면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데 가장 많이 하고 놀았던 것은 역시 딱지치기.

양지바른 곳에 모여 딱지를 치다보면 서로 고함이 오가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로 웃으며 화해를 하고 또 같이 놀고...

지금도 시골장에 가면 보이는 뻥튀기 아저씨지만 그때는 흔히 보는 것이 바로 뻥튀기 아저씨였다.
뻥튀기 아저씨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뻥 소리"가 나면 흘린 것을 주워먹기도 하고 맘 좋은 아저씨일 경우는 한바가지 퍼서 우리에게 주기도 했다. 그 맛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하나의 간식 바로 뻔데기였다.
요즘 아이들 중에 뻔데기 못 먹는 아이들이 태반이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고영양 담백질로 인기있는 군것질 거리였다.
특히 야바위에서 흔히 쓰이는 돌림판을 돌려 상품(상품이라봤자 뻔데기 얼마원치)을 받는 그 재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것이 최초로 나온 쵸코파이였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 쵸코파이는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쵸코바보다도 스티커에 더 관심 있었던 왔다쵸코바.
지금도 스티커 갖고 잇는 사람 있을지...

게임기를 갖고 노는 것이 무척 부러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