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체머리 (얹은머리)
풍성한 머리모양을 내기위해 가발을 위로 덧씌워 올린 머리로 머리 좌우로 각종 장신구를 부착했었습니다. 부자 양반댁에서는 좀 더 많은 가체를 사용하여 풍성하게 꾸몄고 가체값이 없는 일반 사가에서는 본인의 머리를 둘러 올린 머리모양을 많이 했었습니다. 야사로 어느 새색시가 시집갈때 처음으로 얹은머리를 했는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목이 부러져 죽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
머리에 어염족두리(솜족두리)를 쓰고 그 위에 다리로 된 커다란 머리를 얹어 옥판(玉板)과 화잠(花簪)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첩지(疊地)라 함은 왕비는 도금(鍍金)으로 봉(鳳) 모양을, 내명부(內命婦) · 외명부는 도금 ·은(銀) 또는 흑각(黑角)으로 개구리 모양을 만들어 좌우에 긴 머리털을 단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가리마 가운데에 중심을 맞추어 대고 느릿느릿 양쪽으로 땋아 뒤에서 머리와 한데 묶어 쪽을 찐 것입니다. 복잡한 설명이지만 머리 모양을 보시면 궁중에서 저 머리 상태를 한 사람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분의 구분을 위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궁중에서는 평시에도 첩지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궁중법도에 따라 어느 때 갑자기 족두리나 화관을 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여머리 위에 ‘떠구지’라는 나무로 만든 큰머리를 얹어놓은 것입니다. 등극하자마자 우선 궁중에서부터 이를 금하고 다리 대신 나무를 사용하게 하였는데, 이 나무로 된 대용물이 떠구지였습니다. (저 목제장식이 있기 전에는 사람 생머리로 저만큼의 모양을 만들고 있었으니 오죽 비쌌겠습니까)
《북사(北史)》의 <백제조(百濟條)>에서는 출가녀(出嫁女)는 머리를 2갈래로 나누어 이것을 머리 위에 반(盤)한다 하였고 <신라조(新羅條)>에서는 변(폴)하여 머리에 둘렀다 하고 있어 이 머리모양은 기혼녀의 일반 머리모양이었음을 알 수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사치가 심했다고 합니다. 저 위에 얹은 머리모양과 장식을 만들기 위해 싸면 쌀 두섬 비싸면 집 한체값이 왔다갔다 했다고 하네요.
주로 고려시대 부터 조선초중기까지 행해졌던 머리의 형태 입니다. 굴씨성을 가진 여자가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한국성씨에 굴씨가 있는가 모르겠네요. 중국쪽인지...
일반적인 기혼녀의 머리모양 중 하나인데요 쪽머리와 같이 머리를 땋아서 묶은 것이 아니고 그대로 틀어묶은 것으로, 명칭으로 보아 쪽을 머리 뒤에 붙인 것이 아니라 늘여서 어깨까지 처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사진으로는 들려 올라와 있습니다) 이 형태는 중국에서 들어와 고려시대에 유행한 형태인데 처음에는 사가에서 유행하다가 점점 기녀들의 머리모양으로 갔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유생들이 단정치 못하다고 많이 싫어 했다고 하네요.
가체나 여타 머리모양의 기초단계로서 행해지기도 했고 일상생활에서도 사용된 흔한(?)형태의 머리입니다.
주로 조선시대 회화에 많이 등장하는 머리 모양세 입니다.
가체를 이용해 머리를 높인 형태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때 복식정비를 하면서 들어온 머리 형태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시집가지 않은 어린 여성들의 따은머리등도 마찬가지고요. 위의 머리모양은 어디까지나 기본형이고 그 기본형에서 파생된 각종 머리 모양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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