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가슴이 시려오고
비라도 내리는 날엔 가슴이 먼저 젖어 오는데
푸른 빛 하늘에 솜털 구름 떠다니는 날엔
하던 일 접어두고 홀연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것을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삶의 느낌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오십대를 지천명의 나이라 하기에
그 나이 되기를 기다렸다.
젊은 날 내 안의 파도, 그 출렁거림을 잠재우고 싶었기에
오십만 되면 더 이상 감정의 소모 따위에 휘청거리며 살지 않아도 되리라
믿었기에 오십이 되기를 무턱대고 기다려왔었다.
진정 지천명임을
철석같이 믿었었다
이제 세월을 맞이하여 오십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이 지천명인지
무엇에 대한 지천명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고
갈수록 내 안의 파도는
더욱 거센 물살을 일으키고 처참히 부서져 깨어질 줄 알면서도
여전히 바위의 유혹엔 더없이 무력하기만 한데
그래도 굳이 지천을 믿으라 한다면
아마도 그건 잘 훈련되어진 삶의 자세일 뿐일 것 같다.
쉰이 되어서야 어떤 유혹에든
가장 약한 나이가 오십대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도
더없이 푸른 하늘도
회색빛 낮은 구름도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코끝의 꽃향기도
그 모두가 다 유혹임을
창가에 서서 홀로 즐겨 마시던 감잎차도 이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늘 즐겨듣던 음악도 그 누군가와 함께 듣고 싶어진다.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이 만나고픈
그런 나이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싶다.
어설프지도 곰삭지도 않은 적당히 잘 성숙된 그런 나이이기에
어쩌면 한껏 멋스러울 수 있는
멋을 낼 수 있는 나이가 진정 오십대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오십대란 지천명이 아니라 흔들리는 바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