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 백화점에서 옷을 하나 봐 둔게 있는데 너무 맘에 드는 거 있지…." 저녁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는 아내는 느닷없이 옷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괜찮더라. 세일이 내일까진데…." 이렇게 말끝을 흐리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었다. 지금까지 쥐꼬리 월급으로 살림을 잘 꾸려온 아내였지만 힘들게 야근까지 해가며 애를 쓰는 내 생각을 한다면 철없이 백화점 옷 얘기를 저렇게 해도 되는건지 점점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TV앞에 앉아서도, "조금 비싸긴 하지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안 되겠지?" '이 여자가 정말….' "지금 우리가 백화점 옷 사입을 때야?" 계속되는 옷타령에 나는 결국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흠짓 놀란 아내는 대꾸도 없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고 조금 민망해진 나는 더 이상 TV앞에 앉아 있기가 불편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만한 일로 소리를 지르다니….' 남편이 되어가지고 겨우 옷 한 벌 때문에 아내에게 화를 내었다는 게 창피스러워졌다. 그러고보니 몇 년째 변변한 옷 한 벌 못 사 입고 적은 월급을 쪼개 적금이랑 주택부금이랑 붓고 있는 아내가 아니던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 자났는데도 꼼짝을 않는 아내가 걱정이 돼 거실에 나가보니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울다가 잤는지 눈이 부어있었다. 다음날, 아내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 상을 차리고 있었다. 자분자분 이야기를 못하는 성격이라 그런 아내를 보고도 나는 따뜻한 말 한마디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현관문을 나서면서 이렇게 툭 던질 뿐. "그 옷 그렇게 맘에 들면 사…." 그러면서 속으로는 '며칠 더 야근하지 뭐.' 그날 저녁 여느 때와 같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엘 들어서는데, 아내가 현관 앞까지 뛰어와 호들갑을 떨었다. "여보 빨리 들어와봐요." "왜, 왜 이래?" 아내는 나의 팔을 잡아 끌고 방으로 데려가더니, 부랴부랴 외투를 벗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쇼핑 백에서 옷을 꺼내 내 뒤로 가 팔을 끼우는 게 아닌가. "어머, 딱 맞네! 색깔도 딱 맞고…." "……." "역시 우리 신랑, 옷걸이 하나는 죽인다." "당신, 정말…." "당신 봄자켓 벌써 몇 년째잖아." 아내는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리더니 두루룩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언제나 나는 철이 들까!'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있는 천사같은 내 아내. 어느새 내눈도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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