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음악실 ♬/가곡

명태 / 오현명

털보아찌 2009. 4. 1. 01:10

 

양명문 명태

변훈

양명문 시 / 변훈 곡 / 오현명 노래

 

이 노래를 곧잘 부르던 신부님이 있었다.
물론 이만큼 굵고 저음의 바리톤은 아니었지만
이노래는 술자리의 주목을 받기위해 충분하고도 남을 노래다.
한국적인 익살, 그리고 한숨이 섞여 있는 자조적이면서도 재치가 있는 노래 명태...
명태와 오현명씨의 인연을 어디선가 발췌해왔다.

吳鉉明씨가 한국 歌曲史 최고의 성악가로 뽑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의 생애 가 80년 한국 가곡사 혹은 民族史(민족사 )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만주땅 에서 출생한 그는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 며 자라다 6세 때 현제명 성악곡집을 듣고 음악적 감화를 받았다. 형의 친구인 작곡 가 임원식씨로부터 목소리 좋다는 말을 듣 고 中 1때 교회 무대에 처음 섰고 「보리밭 」의 작곡가 윤용하가 만든 조선 합창단 단 원으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징병을 당해 일본까지 끌려갔다가 거기서 조국해방을 맞이하였고, 만주로 되돌아가던 중 38선이 막혀 서울을 떠돌게 되었다. 그러다 극적 으로 현제명씨를 만났고 그 밑에서 일하다 가 경성음악학교 장학생으로 입학, 평생의 스승 김형로씨를 만났다.
6·25 때는 좌익 학생들에 의해 납북되던 중 탈출하여 국군 정훈음악대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는 일생의 레퍼토리가 된 가곡 「명태」를 만났다.
『1951년 해군 정훈음악대에 있을 때, 연락 장교로 있던 작곡가 변훈씨가 날 위해 만들 었다며 던져주고 간 악보뭉치 속에 「명태 」가 있었지요. 멜로디보다 가사 위주로 가 는 생소한 방식, 해학적인 가사가 좋아 발 표했다가 당시엔 지독한 혹평을 받았어요. 작곡가가 낙담해 進路를 바꾸기까지 했으 니까요. 1970년에 다시 불렀다가 유명해져 서 어딜 가나 오현명 -명태, 명태 -오현명 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베이스 오현명

한국가곡 - 명태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푸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 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양/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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