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미륵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내려온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인 고려 광종 19년 968년에 충청도 은진 땅에 문득 아기 울음소리가 나면서 큰 바위가 솟아났다.
당시 피의 숙청으로 고려 초기 기반을 다지던 광종은 이 돌로 불상을 조성하기로 했다.
970년부터 혜명대사는 수많은 석공을 거느리고 공사에 들어갔다.
이후 37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1006년(목종 9년)에 불상이 완성되었다.
공사 중 불상의 머리가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게 되자 혜명 대사는 깊은 시름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제촌을 지나면서 한 쌍의 동자들이 진흙으로 3단 불상을 쌓으며 노는 것을 보게 된다.
동자들은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이 모습을 본 혜명 대사는 크게 깨닫게 되어 이 방법으로 불상을 완성했다.
사람들은 이 동자들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화현이라고 믿었다. 불상을 완공하고 흙을 치우자 하늘에서는 비가 내려 불상의 흙을 말끔히 씻어주었고(灌佛) 상서로운 기운이 3.7일 동안 주위에 서리고 미간의 옥호玉毫가 멀리 빛을 발했다고 한다.
그때 송나라 명승인 지안智眼이 그 빛을 따라 이곳에 와서 불상에 예배를 한 후 ‘마치 촛불을 보는 것처럼 빛나는 미륵불(燭)’이라고 감탄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灌燭寺라 하였다.
불상의 수인手印의 모습과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 화관이 있는 모습 등으로 미루어 본래는 관세음보살로 조성되었다.
하지만 본래 미륵 신앙이 강했던 백제의 지역이었던 이곳 민중들은 미륵부처님으로 여겨 신앙했고 지금은 명실상부하게 미륵부처님으로 경배하고 있다.
이 불상에는 많은 영험담이 내려오는데,
중국에서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쳐들어와 압록강을 건널 때, 이 불상이 노립승蘆笠僧(삿갓을 쓴 승려)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이에 적장이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蓋冠이 약간 부서졌는데,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조선 말, 들 너머 향적산에서 공부하며 역학易學의 완성체인 정역을 쓰신 김일부 대성사께서도 아침저녁으로 이곳으로 와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셨다고 한다.
자료출처 증산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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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길-충남 논산시관촉사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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