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두 말 말고 승학산(乘鶴山)으로 떠나보자.
사실 억새라면 해운대 장산이나 백양산 등지에서도 못보는 것은 아니지만 규모나 장쾌한 조망면에서 승학산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상 인근 사면의 화려하면서도 광활하게 불꽃을 태우는 억새밭이 주메뉴라면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도심의 풍경과 영남의 젖줄인 칠백리 낙동강물의 도도한 흐름은 전채요리나 후식에 비견될 만하다.
사하구 당리동과 사상구 엄궁동에 걸쳐있는 승학산은 해발 496m로 그리 높지 않아 가족등반 코스로 제격이다. 인근 주민들에겐 기껏해야 ‘마을 뒷산’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주변 봉우리와 이어지는 능선 산행을 하다보면 전혀 새로운 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번 산행은 지하철 1호선 괴정역~괴정성당 옆 동산빌라 입구~한샘약수터~헬기장~부산기상레이더관측소(시약산)~시약정~부산항공무선표지소(구덕산)~산불감시초소~잇단 헬기장~승학산 정상~동아대 하단캠퍼스 순으로 이어진다. 3시간 정도 걸린다. 주말 모처럼 늦잠을 잔 뒤 ‘아점’을 먹고 여유있게 가을억새를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코스다.
지하철 괴정역 1번 출구로 나와 곧바로 보이는 나산부인과를 끼고 오른쪽길을 택한다. 150m쯤 걸으면 한우아파트. 여기서 왼쪽 괴정성당으로 가는 일방통행길로 가다보면 정면에 동산빌라가 보인다. 길을 건너 왼쪽으로 가면 ‘어린이보호’ 파란색 표지판이 보이고 그 옆으로 난 계단으로 오른다. 괴정성당이 담너머 보이고 이내 임도와 만난다. 오른쪽 철문옆으로 난 산길로 오른다. 태풍 매미 탓인지 나뭇잎이 이미 바래 올해는 제대로 된 단풍을 보기 힘들 것 같다.
평일 오전인데도 마을 뒷산이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대부분 아줌마들이다.
목장승이 서있는 한샘돌탑을 지나면 곧 한샘약수터. 목을 축인 뒤 계속 오르면 첫 헬기장. 쑥부쟁이와 억새가 가을이 이미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곳에서 앞으로 우리가 오를 세 개의 봉우리가 차례대로 보인다. 정면 오른쪽부터 시약산 정상인 기상레이더관측소, 구덕산 정상인 항공무선표지소, 저멀리 왼쪽 봉우리가 승학산이다. 송도 앞바다와 영도다리 오륙도 등 부산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대티고개~천마산~봉화산~아미산~몰운대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호젓한 송림길을 지나 산불진화용 저수조쪽으로 직진해 35분 쯤 가면 또 다른 헬기장. 승학산 오른쪽 뒤로 보배산과 불모산 화산 장유봉이 보이고, 김해시가지와 그 뒤로 신어산 토곡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 및 근교를 이처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헬기장을 지나면 곧 시약산 정상인 기상레이더관측소.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이다. 이 곳을 지나면 오른쪽에 정자인 시약정이 바위 위에 서있다. 태풍 매미 때문에 지붕이 약간 날아갔지만 신기하리만큼 멀쩡하다. 정자 옆 절벽 바위 위에 서면 왼쪽에 백양산, 그 뒤로 금정산 상계봉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엄광산 황령산 장산 철마산이 차례대로 시야에 들어온다. 발밑에는 꽃마을과 내원정사가 누워있다.
시약정에서 나와 구덕산 정상인 항공무선표지소를 거쳐 승학산 정상으로 가는 안부까지는 시멘트길. 하지만 정면에 낙동강과 가을색 짙은 김해평야가 보여 지루하지 않다.
서대신동 꽃마을에서 승학산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이 곳에서 만난다. 여기서 승학산 정상까지는 2.35㎞. 숲길로 들어선다. 헬기장을 지나 무명봉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안부. 산불초소가 있고 승학산 억새보호안내 팻말이 서있다. 이 때부터 억새밭이 본격 펼쳐진다는 의미다. 정상까지 1.45㎞. 억새군락이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며 물결치는 아름다운 장관은 가던 걸음을 수차례나 멈추게 만든다. 하얗게 핀 억새를 만져보니 솜털처럼 부드럽다.
억새밭 옆에 그늘을 드리운 소나무 밑은 어김없이 등산객들의 차지. 이곳저곳 한 두군데가 아니다.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치기가 안타까웠던지 빙 둘러앉아 점심이나 간식을 들며 웃음꽃을 피운다. 화왕산이나 재약산 사자평에 비해 방대하지는 않지만 이 가을, 억새산행지로는 전혀 뒤지지 않는다. 정상에 가까이 갈수록 낙동강과 김해평야가 점점 다가온다. 온통 가을색이다.
마침내 정상. ‘학이 하늘에서 우니 온 세상에 다 퍼진다’라고 새겨진 비석과 돌탑 정상석이 차례로 서있다. 가덕도 연대봉과 영남알프스인 영축산, 가지산, 백양산, 금정산 고당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쾌한 조망이다. 하산은 서쪽인 동아대 하단캠퍼스쪽으로 내려선다. 가파르지만 40~50분 정도면 캠퍼스 입구 주차장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