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의사진첩 ★/옛날 생활

1900 년대 그시절 그모습

털보아찌 2008. 10. 3. 23:09

 

 
종로거리(1907)
칼을 찬 순경이 죄인을 감시하고 있고,
오른쪽 이발소 간판 밑에 가로등이 보인다. 

 
명동성당(1905)
앞의 종탑은 명동성당이며, 뒤의 흰 3층건물은 샬트 수녀원이다. 

 
옛 조선호텔 앞 거리(1900)
일본에 의해 황근우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을 건축하기 전의 모습이다 

 
소공동 중심가(1903)
당시 충무로와 소공동은 가장 번화한 거리이다.
중앙의 누각은 현 조선호텔에 남아있는 황궁우이다. 

 
용산 나루터(1904)
이곳은 나룻배를 건조하던 장소로 유명하다.
줄무늬 상의를 입은 소년과 목판에 엿을 담은 어린 엿장수가 엿을 팔고 있다.
소년의 옷차림이 당시 유행에 민감했음을 보여준다. 

 
마포 나루터(1900)
왼쪽에 밤섬이 보이고, 이곳 마포 나루터는 화물 선착장으로 유명했다. 

 
옛 진고개 (1904)
진고개는 현재 충무로 2가의 고갯길로서
흙이 몹시 질어 진고개라는 지명이 생겼다.
명동성당과 북악산이 보인다.
1906년 8척 가량 파내어 길을 닦고
높이 5척의 방주형 수멍을 묻었다.
이것이 서울시내 수멍도랑의 시초이다. 

 
광화문 전경(1907)
당시 이거리는 도성에서 제일 넓은 거리였다.
왼쪽에는 통감부 통신관리국이 있고,
오른쪽 건물엔 일본관리인과 군부대가 있었다. 

 
소공동 거리(1907)
소공동 주변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약방이 많았는데
일흥노약방 뒤로 원구단 누각이 보인다. 

 
서대문밖 곡물창고
당시 이곳에는 곡물창고가 있었고 왼편의 건물은 전차수리소이다.
멀리 보이는산은 인왕산이다. 

 
중학천(1907)
뒤의 누각은 경복궁 동십자각이며 백악산 밑에서
경복궁을 거쳐 청계천과 합류하였다.
하천 주변에 주민들은 이곳을 빨래터나 목욕터로 이용하였다 

 
청계천(1904)
청계천은 서울 중심을 흐르는 하천이며
말그대로 물이 맑아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이용되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사진이다. 

 
독립문 앞 전경(1931)
각종 채소들이 집산되어 시내로 유입된다.
이곳은 일본인들이 의주통이라 불렀다. 

 
충무로 입구(1903)
충무로 입구에서 바라본 명동성당이다.
당시 충무로는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 

 
서부역 부근(1907)
이곳은 저지대라 비가오면 진흙땅이 된다.
멀리보이는 건물은 약현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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