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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료는 60년대와 70년 고속도로 개통 시 까지의 우리나라 생활상에 대해 뒤 돌아보고자 해서 올립니다 다소 빛 바랜 사진이기는 하나 자세히 뜻어보면 당시의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꿈과 희망이 엿보이는 모습들입니다.(편견없이 편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농기계가 없는 시대라 바람을 이용하여 타작을 하고있는 모습입니다 지게로 모를 저내고 농사 일을 인력으로 힘겹게 하던 시절이었지요 비닐우산을 쓰고 비바람에 넘어진 벼를 한톨이라도 더 건지려고 세우는 중입니다 다목적땜이 없어서 천수답에 의존하던 시절, 비닐호수로 논밭에 물을 대고 있는 모습입니다 삼베를 짜기위해 작업중입니다 밭에 씨를 뿌리고있네요 소먹이다가 더위를 못이겨 "풍덩! 가뭄으로 메마른 밭을 쟁기로 갈고있는 농부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뙤약볕아래 조(서숙)밭에서 김을 메는 어머니들의 모습입니다 형편이 낳은 농가에서는 발동기로 지하수를 퍼올려 농사를 지었지요 개울이 가물어 아이들이 이곳에 모여 멱을 감습니다 지게, 비료, 흙묻은 고무신,농부들의 모습이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우시장= 농가 재산 목록1호 소가 있는집은 부자집으로 통했지요 도심의 비탈진 달동네입니다 달동네에 공동우물이 마르면 소방서에서 공급하는 식수로 가뭄을 버티고... 집집마다 물지게는 필수품이었지요 짊을지고 가는부부 따로 떨어져갑니다, 당시에는 부부간에도 나란히 겉으면 흉이 되곤했지요. 아낙네들은 늘 남정네 뒤에서서 걸어가곤 했답니다 거문도= 해녀들이 작업이 끝나고 돌아 가는 모습입니다 한가정 여자1명 취로사업(공공사업)장에 나갈 수 있었답니다 일당으로 밀갈루 배급을 받곤했지요 바닷가 어선옆에 앉아 아기젖을 먹이는 모습입니다 강원도 산골 너와집에(굴피나무 겁질지붕)무장공비(북괴 특수게릴라)가 침투하여 무고한 주민을 학살한 현장임. 당시 북괴124군부대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습격 미수사건,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200여명이 침투하여 수많은 주민들을 학살하고 우리나라 곳곳에서 북괴만행이 자행되던 시절이었지요,,이때 예비군이 창설되었답니다(450만명) 암행어사가 지니고 다니던 마패입니다,이것을 꺼내들면 산천 초목이 벌벌 떨었다고하지요 말 2마리 또는3마리 숫지가 많은수록 지위가 높은 암행 어사였지요 1900년대 초 사진입니다(현 독립문 근처) 자유당시절 국회의시당 앞 같습니다 쟁기를 손보는 어머니= 아이들은 늘 어머니 그늘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다녔지요 어머니께서 수십리길 이고지고 걸어서 장에가시고나면 보채는 동생을 업고 해질녁 언덕 받이에 올라가 오는이마다 우리 엄마인가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지요 고아원의 아이들식사 하는 모습입니다 머리는 누구나 할것 없이 부스럼이나서 헐고,가려워 긁으면 피가나고 아물면 또 가려워 긁고.. 한강변=그나마 대도시 어린이들은 형편이 많이 낳았지요 특별한 놀이감이 없어 골목길마다 여자 아이들이 모이면 고무줄 놀이를 하였지요 "무찌르자 오랑케!~ 이런 노랫말 가사가 떠오르네요^^* 추운겨울 등교하는 모습입니다 간혹 골목에 귀한 자동차가 주차되있으면 동네아이 다모여 최고의 놀이터가 되었지요 바퀴 바람도 빼고,흙탕칠도 해보고 잡히면 혼나고 도망가고 ㅎㅎㅎㅎㅎ 넝마주의=폐품 수집하는 분들로 집게로 집어서 등의 광주리에 담고했지요 다리 및 거적대기나 가마니로 움막을치고 살며 아침 저녁으로 큰 깡통을 들고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려 찬밥이나 반찬을 동냥하여 먹고 살았으며,한사람의 두목이 여러명의 조직원을 구성하여 집단 생활을 하였답니다 대 가족시대 형제들 먹여 살리느라 어머니들은 영양실조에 걸린분들도 많았답니다 아기젖이 모자라 늘 울고 보채고 가는곳 마다 아기울음 소리가 많이도 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산후 몸조리 걱정보다 태어난 자식 키울 걱정이 앞섯던 시절이지요 배고픔이 먼지 하루 두끼 먹기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형제가 많아 싸우긴 했어도 끈끈한 정이 넘처 흐렀습니다 유세장에서 밀집 모자를 쓰고 입후보 연설을 경청 중이십니다 수박은 서비스인지 장사꾼 것인지 모르겟네요 ㅎㅎㅎ 투표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이때는 기권이 먼지도 잘 모르던시대라 투료율은 상당히 높았답니다 서울의 어느 시장입니다 시장에 무슨 행사가 있나 봅니다 난전에 파는 닭입니다.닭 한마리 사면 가마솥에 무우4~5개 썰어넣고 한 솥 끓여서 온동네 한그릇씩 나눠먹던 그때 그 시절의 이웃간 정이 그립습니다 영산강변=정자 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하는 모습입니다 귀저기를 광목으로 사용하던 시절이라 어린시절 아마도 거의가 아래 도리는 벌거벗고 자랐지요 한강 둑섬= 장안 최고의 레져공간이엇습니다 수원~서울간 경부 고속도로 개통 왼쪽이 수원 위쪽이 서울 방향입니다 70년의 광화문= 국산 조립 차량들이 옛정취를 물신 풍깁니다 끝으로 당시에 도 농간과 도시간에도 빈부 격차가 있었음으로 어느한쪽으로 편향된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 추억들을 뎃글로 달아주시면 최종정리 할때 참고 자료로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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