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이런 저런 사정들로 연말모임도
제대로 가지지 못했는데
송구영신 악수나 한 번 하자는 것이었다.
강남의 한 식당에서 모인 친구들은
모두 10여 명이 되었다.
서울 살이 30년이 다 되어가는
촌뜨기들이었지만 그래도 이 광활한 서울에서
자기 자리를 확실히 확보하며
자신있게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내색 대신
친구를 위로하고 격려했던 우리들이었다.
그러나 이날 만큼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송구영신 악숫말 치고는
너무도 무겁고 갈앉아있는 느낌이었다.
몇 순배 술이 돌고, 술기운이 조금씩 오르면서
차츰 목소리도 톤을 높여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구석에 앉은 한 친구가 다들
들어라는 투로 말문을 열었다.
“종렬이를 어떻게 할거니?
못본체할 수만은 없는거 아냐?”
다소 원망섞인 투의 그의 말에
우리는 일제히 그를 집중했다.
종렬이... 그는 우리 동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케이스다 싶을정도로 서울의 한복판에서
잘나가던 패션업계의 사장이었다.
간혹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뚜기처럼 곧잘 일어서곤 하던 녀석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해 연말 무렵에
수십 억원의 부도를 맞았다는 것이다.
400여 명의 직원들이 일시에 흩어지고
강남의 잘나간다는 빌딩 몇 개 층을
쓸 정도였던 그의 회사가 졸지에
형체조차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루아침에 쫒기는 신세가 된 그를
우리가 찾아냈던 것은
그로부터 달포가 지난 세밑이었다.
강남의 한 작은 오피스텔에 은신하고 있던
그에게 우리는 소주 몇병과
삼겹살용 돼지고기를 사서 조촐히
위로의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당당하던 CEO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없었다.
회사가 날아가면서 가정적으로도 불행이 겹쳤다.
집으로 찾아들던 채무자들의 성화를
못이기고 그의 아내도 중학생이던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단다..
결국 그 집도 경매처분이 되자 갈곳이 없던
종렬이는 그래도 노숙자 보다는 낫다고
자위하면서 8평짜리 오피스텔로 찾아든 것이라 했다.
“종렬이를 어떻게 할거니...”
우리는 이 말을 화두로 던진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에 큰 돌 하나가
얹히는 느낌을 받았다.
하는 일마다 수월하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요즘아닌가.
그때 누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성의껏... 자기 형편껏... 한 번 해보자...”
우리는 그 다음 날,
돈의 액수도 이름도 밝히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십시일반으로
하나씩의 봉투를 준비했다.
모여진 10개의 봉투를 가지고
다시 그의 은신처로 찾아갔다.
그렇잖아도 구렛나루가 무성하던 그의 얼굴에서
일순 일그러지는 표정이 그려졌다.
처절한 울음이 꽉 깨문 입술에서
쏟아지고 있음을 보았다.
우리는 서로 어깨를 감쌌다.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경상도 사내들이 그렇게 울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재기를 독려했고
그리고 힘내라고 위로했었다.
울음인듯, 웃음인 듯 그의 입술이 쭈뼛거렸다.
그리고 10여일 후..
나는 퇴근 무렵에 종렬이의 전화를 받았다.
‘야, 새해 복 많이 받아라!’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힘이 있던지,
대뜸, 반색을 하면서 내가 그랬다.
“얌마!, 그래...살아있었구나...
너... 그 돈으로 니 장사지낸줄 알았다!!”
얼마나 반가웠던지...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그예 눈시울이 젖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종렬이는
친구 몇 사람을 초대한다고 했다.
대치동 전철역의 한 건물 지하에 <나그네>라는
실내 포장마차를 냈단다.
흔쾌히 ‘그러마,’했다.
지하철 역에서 가까운 그곳 실내포장마차에는
벌써부터 많은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40여 평의 실내공간이 결코 좁아보이지는 않았다.
종렬이는 우리가 마련해준 작은 성금으로
이곳에다 재기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제법 인테리어도 신경을 썼다고는 했지만
아마추어 냄새가 진득했다.
돈 아낀다고, 손수 벽지를 사다 바르고
이것 저것 재활용품을 사다가
모양도 낸 폼이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구석의 한 자리에다 자리를 잡았다.
얼굴을 활짝 편 종렬이의 모습을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았다.
자기가 집접 조리했다는
제육볶음을 들고와서는 우리들에게
일일이 술잔을 채워주면서 말했다.
“고맙다!”
그래...‘고맙다’는 말 외에 더 큰 인사가 어딨겠는가.
우리가 그의 재기를 기원하면서
건배를 하고 그리고 잔을 막 내려놓았을 때다.
내 옆에 누군가 서있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잠깐이지만 아찔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 애 엄마야. 어제... 친정에서 돌아왔어...
니들이 고마워서... 그냥 못있겠더래...”
우리는 종렬이 아내의 얼굴을 보기 전에
우리들 서로를 보았다.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감격한 모습을
지울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아내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잘 오셨어요... 고마워요...”
그의 아내는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고 우리들 모두도 가만가만
눈가가 젖어가는 것을 서로가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 말없이 한참을 흐느끼던 그의 아내가
대충 진정을 하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옆자리의 손님도 그리고 그 옆자리의 손님도...
우리들과 똑같이 일어나 종렬이 부부에게
힘있게 박수를 보냈다.
누군가 입구쪽 자리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자, 자- 우리 건배 한 번 합시다.
이곳 사장님을 위하여!”
“위하여!”
종렬이와 그의 아내가
서로를 마주 보며 환히 웃고 있었다.
이글은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