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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동안 묻어둔 아내의이름

털보아찌 2008. 12. 12. 21:44

    대학교때 처음 만나,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있어 준
    아내와의 결혼 기념일입니다.
    딸 일곱의 막내인 아내는 아들일 기다리며,
    장인이 집에서는
    미리 사내아이 이름을 지어 불렀습니다.
    그래서 영수입니다.
    친구처럼 지낼때 늘 부르던 이름이
    어느 날 아이를 나으면서 "서희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10년이 넘게 서희엄마라고
    부르면서 나는 어느듯 영수를 잊고 살았습니다.
    방송국에 근무하다
    96년에 나와서 의욕을 갖고 벤쳐를 시작했습니다.
    늘 회사에서
    직원들과 같이 자던 날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했던 회사가 망하고,
    2000년에 다시 회사를 시작했지만,
    요즘 또 많이 어려워져
    그 곱던 얼굴에 그늘이 져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내가 있어서,
    늘 새로운 도전에 용감했던
    나 자신이 참 많이 후회가 됩니다.
    멀리 출장와서
    아내에게 오늘은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은 아내와 14번째 결혼 기념일입니다.
    내 아내가 오늘은
    이 편지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영수에게 --
    참 오랫동안 그 이름을 아스라이 잊고 살았다.
    어둔 골목길 같은 인생에서
    그냥 나지막이 영수야 이렇게 부르면,
    술에 취해 혹은 오물에 젖어비척거리는
    나를 늘 토닥거렸다.
    그 포근한 안도감에 문득
    나는 내가 걷던 까만 길을 다 잊고,
    네가 가끔 힘들어하고
    또 재촉하며 `차마 나에게 무슨 상처’라도 될까‘
    무언가를 쭈뼛거리고 말할 때도
    나는 신이 나서 귀를 닫아두고는
    골목길 담장 너머를 기웃거렸다.
    왜 이리 그렇게 보낸
    세월에 서러운 마음이 들까
    ‘냉철함과 창백함을 지키기 위해’
    삶의 끝에 칼날을 꽂고
    어느 다방에서 자살했다던
    시인의 그 유서 한 구절이
    내 못난 반쪽의 자화상 같아서
    서럽고 차라리 창백해지지도
    못하고 냉철하지도 못한 비척거림이
    유난히 초라해 보여
    또 서럽고한 꾸러미 선물 하나 챙기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향버스에
    오르는 초로의 인력시장 노동자 같은 그림자가 서럽다
    또 안 그래도 힘겨운
    영수에게 이런 속내를 털어내면
    어떤 기분일까를 잘 알면서도,
    그저 철없는 아이처럼
    주절거리는이 밤이 그저 서럽다.
    요 몇 달을 차가운
    현실의 바닥에 내쳐져얼마나 많이
    후회하고 참회하고,
    또 영혼의 살점을 물어뜯으며
    혹은 채찍질하며,
    내가 바랐던 소망 하나는
    영수에게 환한 웃음을 돌려주고 싶다는 바램이었다.
    파스를 붙여주며,
    꺼칠해진 너의 등짝에 마음이 메이고
    내 곁에 다가오면 습관처럼 네 손을 쓰다듬다
    예전과 달라진 촉감에 퍼뜩 정신이 들때도,
    자고 있는 너의 발을 조물락거릴 때도...
    이제 고백해야겠다.
    내가 심판 받는 자리에서
    신이 나에게 묻는다면,
    “너와 함께 살게 해준 세월은 신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좀은 부끄러우나 좀 더 많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시간들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를이제는
    좀 철이 들었는지그저
    이 한 줄을 치는데 울컥 치솟는 무엇처럼 생생히 느껴지는데...
    우리가 서 있는 이 차가운 현실이 어쩌면
    나의 고백마저 얼어붙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들지만,또 앞으로 얼마나
    더 매서워질지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
    너의 환한 웃음을 보고 싶다는
    희망으로 어떻게든 걸어갈까 보다.
    고맙고 또 고맙고,헤아릴 수 없이 감사한다.
    그리고 다음 말은환한 해가 뜨는 날
    좀은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2004년 5월 26일이제는
    참 초라해진 우리 결혼을 기념하며 부산 출장 중에
    현식이가 영수에게......
    이글은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