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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지계에 엎고 금강산 유람한 아들

털보아찌 2009. 2. 4. 22:02

온몸 피멍에도 "아버지 마음껏 구경 기뻐"


[중앙일보] 아흔을 넘긴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아들. 혼자서 오르기도 힘들다는 금강산을 아버지를 모시고, 그것도 지게에 태워 관광을 다녀온 이군익(42)씨. 이 씨는 아버지를 지게에 모시고 금강산을 오르는 사진이 한 언론사의 독자투고란에 실리면서 인터넷상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이씨를 인천에서 23일 만났다.

"금강산 가믄, 1만2000봉에 8만여남으개 암자가 있다던디…."

지난 봄, 아버지 이선주(92) 씨가 독립기념관 나들이 길에 언뜻 금강산 얘기를 꺼내셨다. 한 해 전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신 아버지가 적적해하실까 싶어 한창 산으로 들로 모시고 다니던 때다. "중학교 다닐적에 집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지요. 충남 서산 빈농에서 자랐습니다.


7남매의 막내인 저까지 대학 공부를 시키시느라 평생 허리 한 번 못 피신 아버지십니다.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예 아버지, 금강산 아니라 그 할아버지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다짐했지요."

6월 아버님 생신에 즈음해 금강산 여행을 보내드리자고 형제들과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산에 오르시는 건 불가능한 일, 산 길이니 휠체어도 무용지물일 터였다. "어떻게하면 아버지께서 금강산 절경을 마음껏 눈에 담으실 수 있을까, 며칠 밤을 고민했습니다. 아버지를 등에 업고 가면 될 것 같은데, 기력이 쇠진하시니 아들을 단단히 붙드시지 못할 일이 걱정이고…. 그런데 번뜩 산에서 나무하던 생각이 나는 겁니다. " 불현듯 어릴적 지게지고 산에 올라 나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지게에 아버지 의자를 만들면 되겠구나.' 나무 지게는 무게 때문에 여행 내내 지기 어려울 듯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가볍고 강한 알루미늄 지게. 그 때부터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지게를 만들기 위해 설계도를 그리고, 지게를 만들어 줄 기술자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모두들 '못 만든다'며 손사래를 치거나 터무니없는 공임을 요구했다. 집과 직장이 있는 인천을 비롯해 서울 곳곳을 뒤져가며 한 달여 동안 임자를 찾아다녔지만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지게'를 만들어주겠다는 기술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일을 헤맨끝에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등산용 지게에 특수용접을 해 금강산 유람을 위한 '아버지 전용 지게'가 탄생했다.

지게 지느라 온 몸 피멍… "아버지 좋아하시니 기쁘기만해."

"북측 안내원이 지게를 보고 정색을 하며 뭐냐고 묻는겁니다. 아버님 모실 지게라고 했더니 연세를 묻더군요. 아흔 둘에 아들 등에 업혀 금강산 가신다고 했더니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럽디다. '하하하 통과하시라요!'"

지게와 그 위에 앉으신 아버지 덕분에 여행 내내 이씨 일행은 단연 스타였다. 초여름 날씨에 혼자 걷기도 험한 산 길을 아버지와 한 몸이 되어 오르는 이 씨를 보며, 연배 높은 관광객들은 이 씨 일행을 만날 때마다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젊은이들은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이 씨가 아버지를 업고 한 발 한 발 떼는 모습에 시선을 모았다. 함께 금강산에 오른 큰 누나 이춘익(62)씨와 형 이관익(55)씨도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막내 동생의 효행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아버지를 업고 천선대로 귀면암으로, 구룡폭포로…. 이 씨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에게 짐이 될까 한사코 업히기를 거부하시던 아버지도 "저기가면 뭐가 있다냐?" "아이고, 저게 그림이여 경치여." 질문에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어느덧 금강산 구경에 흠뻑 취하셨다. 지게 무게는 줄잡아 15kg이상. 아버지가 올라앉으시면 60kg이 넘는다.

이씨는 "산행이 이어지면서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어깨와 팔이 뻗뻗하게 굳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어린애 모양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금강산 온천에 갔더니 동행한 우리 형님이 깜짝 놀라시는 겁니다. 지게 지는 동안 실핏줄이 터졌는지 상반신 전체가 거의 피멍이더라구요. 형님이 울컥하시는데, 제가 웃자고 했습니다. 아흔 넘으신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금강산 구경을 마음껏 하셨는데, 얼마나 좋냐구요."

이 씨 집 마당 한 켠의 작은 정자에서 가슴 따뜻한 금강산 유람기를 듣는 동안 말귀 어두운 그의 노부는 묵직한 감동이 담긴 아들의 얘길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사이사이 불혹을 넘긴 아들을 두고 "우리 막내가 일곱 놈 중에 제일 이뻐. 제일 구엽고 아버지라면 아주….""충남 서산서 평생 농사만 지어먹은 내가 아, 남한 땅 안 밟어본 디가 없고 금강산까지 구경했으니 갈 데도 없는겨 인제."라며 효심 깊은 아들 자랑에 입이 말랐다.

이 모습을 이 씨의 아내 이연희(39)씨도 시종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시아버지를 어릴적 여읜 친정아버지로 여긴다는, 시어머니 임종전까지 성심으로 병수발을 했다던 이 씨의 착한 아내 뒤에선 여덟살 손녀 수연이가 "할아버지! 그만하고 인제 같이 놀아요!"를 외치며 바짓자락을 잡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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