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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아더의 인천상륙

털보아찌 2009. 2. 20. 12:43

 



윗쪽의 긴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어있고, 오른 쪽 아래의 방파제는 소월미도로 연결되는 길입니다.

 

1950년 9월 14일 밤 2시

칠흑같은 어두움을 뚫고 19척의 선발함대가 종대로 줄을지어 팔미도의 등불을 신호삼아 인천 앞바다로 진입해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의 서막이 올려지는 순간이지요.

 

1950년 9월 15일, 새벽 5시 정각.

공격개시명령을 받은함포의 포문이 열리고 코르세어 함재기들이 월미도를 향하여 날아가 격렬한 포격을 개시합니다.

그리고 해병대 병사들은 상륙용 주정으로 옮겨타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벽 6시 27분,

미 해병 제 1사단 5연대 3대대 병력이 17척의 상륙용주정에 분승하고 9대의 탱크를 실은 3대의 대형 상륙주정도 함께 월미도 해안(그린 비치)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아래의 "코주부"장군이 작성한 작전도를 보아 주십시요.

"월미도"는 인천항을 외곽에서 둘러싸고 호위하는 형상을 하고있는 섬으로서 육지와는 방파제로 연결되어있고, "소월미도"와도 작은 방파제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의 제 1파는 바로 월미도...지금의 문화의 거리가 형성되어있는 해변에 상륙하였는데 이 위치의 작전명은 "그린비치" 였습니다.

 

 

북한군이 쏘아대는 기관총 사격을 받으며 해안에 상륙한 미 해병대는 1개 소대를 기관총이 날아오는 "소월미도"로 진격케하고 일부는 산 정상을 향하여 공격해 올라가며, 다른 일부가 섬을 좌로 돌아서 인천시내와 연결된 방파제 입구까지 전진하여 인천 방향에서 몰려올지 모르는 북한군에 대한 방어선을  구축합니다.

 

이 방파제가 바로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도로이며 멀리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지금의 '대한제분'이 있는 위치로서 작전명"래드비치"...금일 저녁의 상륙목표인 것입니다.

 

 3대대의 주력은 바로 월미산 정상을 향하여 공격해 올라가서 섬에서 동굴을 파고 저항하던 북한군 병력을 섬멸합니다.

이 섬에는 약 400명의 북한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108명은 사살되고, 136명이 포로, 나머지 병력중 100여명은 동굴에서 저항하다가 매몰되어 사라졌습니다

.

 미 해병이 월미도에 대한 소탕을 완료한 시간이 대략 오전 8시,

이제 그 유명한 인천의 간조로 인하여 바닷물이 멀리까지 빠져나가 저녁 때 물이 다시 들어올 때 까지  바다로부터의 지원은 없으므로 인천으로부터 북한군이 몰려오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진지를 구축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월미도에서 사살당한 북한군 시체들

 

오후 4시 45분 만조가 시작됨.

만조가 시작되자 미 해병대의 제 2파가 상륙을 개시하여

미 해병 제 5연대는 17시 33분에 북쪽해안(래드비치)..지금의 대한제분공장자리...에 상륙을 개시하고,

미 해병 제 1연대는 17시 32분에 인천항 남쪽 송도해안(불루비치)에 상륙을 감행합니다.

 

다시 코주부" 장군의 작전도를 참고하여 주십시요.

 

 

작전도와 같이 미 해병 5연대의 1,2 대대와 자랑스러운 우리 해병 제 1해병연대 제 3대대의 병력은 북쪽의 "래드비치"로 상륙했으며, 미 해병 1연대는 인천의 남측 송도 방향의 "불루비치"로 상륙을 감행하였던 것입니다.

이 상황을 한 눈으로 보여주는 항공 사진으로 보시지요.

 

 

9월 15일 저녁 5시 30분에 "래드비치"와 "불루비치"로 달려가는 상륙용 주정의 모습이 한눈에 보입니다.

월미도의 상황은 이미 끝나서 "래드비치"로 이어지는 방파제를 따라서 탱크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며 '자유공원"을 폭격하는 미 해군의 코르세어 공격기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천에 침투해 있던 국군의 첩보조직은 자유공원에 4개소의 방공포대가 구축되어있음을 알려주었었죠.

당시의 인천의 외항과 내항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이는데 인천항은 교두보가 확보되면 대량으로 물량이 하역될 "옐로우 비치" 였습니다.

 

 

"래드 비치"로 달려가는 미 해병대...."래드 비치"는 방파제로 둘러쌓여 있으므로 이 사다리는 방파제를 올라가기 위하여 방파제의 높이에 맞추어 제주도에서 미리 준비해 온 것입니다.

 

과연! 사다리를 이용하여 방파제를 올라가고 있는 미 해병과 한국 해병대 병사들의 모습입니다. 이 때 인천 역 방향에서 기관총 사격이 날아오며 저항이 있었으나 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서울 방향에서 달려오던 북한군 병력은 미군기의 워낙 거센 폭격에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상륙성공후 월미도에 접안하여 물자를 하역중인 LST 함들.

 

 

다음 날 아침 .."래드 비치"로 상륙한 한국 해병대 3대대 와 "블루 비치" 방향으로 상륙한 해병대 1대대의 병사들은 미 해병대의 병사들과 인천 시가지 소탕작전에 나서게 됩니다.

 




생포된 북한군 포로들이 방파제에 모여있다.

 

9월 16일, 인천이 완전히 아군의 수중에 들어오자 인천항(옐로우 비치)을 통하여 미 육군 제 7사단의 병력과 한국군 제 17연대의 병력이 상륙하여 서울로 공격할 준비를 갖춤으로서 역사에 남는 인천상륙작전은 막을 내리는 것입니다.

 




인천 시내에서의 북한군 포로색출

 




상륙작전의 성공 후 인천항(옐로우 비치)에 상륙한 맥아더 장군과 해병 1사단장 스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