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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털보아찌 2009. 2. 20. 18:13

 

 
 


한국전쟁 58주년 -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사 진 화  보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한국전쟁의 상흔은 진정 어떠했을까.

한국전쟁 발발 56주년을 앞두고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 전쟁 관련 사진들이 또다시 공개됐다.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 2’(눈빛)에 실린 이 사진들은 지난해 소설가 박도씨가

발굴한 것으로 당시 군의 활동과 국민들의 비참한 생활사를

손에 잡힐 듯 보여주고 있다.

1951년 5월 피란민들이 뗏목으로 엮어 만든 한강 부교를 건너고 있다(사진 위).

1951년 서부전선에서 체포된 중공군들이 자신들을 사살할 것으로 오해,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두번째). 1952년 9월 어느 산비탈에 마련된 피란민촌.

한국전쟁 동안 전국 방방곡곡에는 이런 움막이나 천막집이 수두룩했다

 

6·25 당시 北인민재판 사진공개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인민재판을 하는 과정을 촬영한 사진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56주년을 맞아 공개한 이번 사진은

950년 경찰관 23명에 대한 총살을 강요하는 선동 인파가 모처에서 출발하는 모습 (위)과 이들 경찰관이 인민재판에 (가운데), 경찰관들이(아래) 등을 담았다.

이 사진들은 서 사형 언도를 받아 집행장으로 출발하는 장면 군중 앞에서

인민재판을 받는 광경 북한 인민위원회 선전부원 김모 씨가 촬영한 것으로

촬영 장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인민재판 사진을 비롯해 6·25전쟁의 다양한

풍경을 담은 사진전 ‘기록사진으로본해방전쟁생활상’이 22∼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층 로비에서 열린다.

 


 

▲ 국가기록원은 6.25전쟁 57주년을 맞아
'기록사진으로 본 전쟁.생활상'을 주제로 한 사진전시회를 22일부터 정부중앙청사 1층

로비에서 연다. 사진은 경찰관 23명에 대한 인민재판을 집행하는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 재탈환 전 서울 독립문

국가기록원은 6.25전쟁 57주년을 맞아 '기록사진으로 본 해방.전쟁.생활상'을 주제로 한

사진전시회를 22일부터 정부중앙청사 1층 로비에서 연다.

사진은 재탈환 전 서울 독립문 부근(51. 3. 5). /국가기록원 제공



 

▲ 임진강 부교

국가기록원은 6.25전쟁 57주년을 맞아 '기록사진으로 본 전쟁.생활상'을 주제로 한

사진전시회를 22일부터 정부중앙청사 1층 로비에서 연다.

사진은 휴전회담장으로 가는 길-임진강 부교(浮橋)(51.7.15). /국가기록원 제공

 

 

헐벗고 굶주리고 차이고… 그래도 살아내야만 했다

 


 

미군의 네이팜탄에 온몸이 데인 여성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다.

1951년 수원.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서울 거리를 한 아낙네가 보따리를 이고

지나고 있다.  총, 폭탄, 탱크, 공습 그리고 주검. 전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선의 일부. 후방의 민중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차이고,

폐허 속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살아내야만 했다.

한국전쟁 57돌을 앞두고 전쟁 사진 230점이 공개됐다.

〈지울 수 없는 이미지 2〉(눈빛 펴냄)로 묶은 이 사진들은 소설가 박도씨가 지난해 11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을 뒤져서 찾아낸 480점 가운데 일부다.

미군 또는 미 정부 소속 종군사진가들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에는

한국전 당시 전선의 뜨거운 공방과는 다르지만 또다른 생존경쟁이 생생하게 담겼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산하, 마을, 집. 바닥으로 떨어진 비참한 가운데서도

가족의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어머니들은 거리로 나서야 했다.

특히 가장 상처받기 쉬운 어린이들은 위문대로, 하우스보이로, 구두닦이로

호출당해야 했다.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2. 북한군 포로.ⓒ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6.25 참전국

 


6.25 參戰 16個國



Australia


Belgium


Canada


Columbia


Ethiopia


France


Greece


Luxembourg


Netherlands


New Zealand


Phillippines


South Africa


Thailand


Turkey


United Kingdom


USA

 

 

 

 

 

 

 

 

 

 

<출처;yahoo akwaltz03 (akwaltz03)>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중 눈빛 출판사가 제공한 사진 14 장면


탱크를 배경으로 동생을 업고 서 있는 소녀,
머리는 헝클어 지고 옷차림은 남루하지만
굳게 다문 입과 결의에 찬듯한 눈매에
절망의 그림자는 찾을수 없읍니다.


어머니는 일터로 나가고 없고,
혼자 남겨 둘 수 없는 동생을 안고 학교로 왔습니다.
교실은 불타고 없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답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1950년 10월)


얼음이 둥둥 떠내려 가는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부자의 모습.
(1951년 1월)
석장의 사진은 50여년전 한국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가고 있던
우리네 어머니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한국전쟁 발발 56주년.
온 방송은 월드컵 소식을 하루 종일 되풀이 해 방송하고 있지만
오늘 하루 쯤은 당시를 생각해 보게하는 사진을 싣는 것도
전혀 무의미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월미도에서 체포된 뒤 옷이 벗겨진 채 검색을 당하고 있는 북한군
(1950년 9월)




장갑차를 탄 미군들이 서울로 진입하는 모습.(1950년 9월)




인적사항이 적힌 목걸이를 걸고 새 옷이 지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북한군 포로들.(195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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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학살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 중에서
가족을 확인한 유족들의 울부짓는 모습.
(1950년.10월 함흥)




미 공군 전투기가 원산 시가지를 폭격하는 모습(1951년)




서부전선에서 체포된 중공군.
사살할 것으로 오인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1951년)




미군의 네이팜탄 공격으로 부상당한 여인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는 모습.(1951년.2월 수원)




전란중의 남대문.(1951년 3월)




자기가 그린 태극기를 들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평양의 한 학생과 엎드려 있는 북한군 병사.(1951년 10월)




이미 숨진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
이곳을 지나던 영국군과 호주군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
(촬영일시 미상)




북으로 돌아가는 북한 여군 포로들.
열차 밖으로 인공기 등을 내걸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
(1953년.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