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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과 경내 |
원효와 의상스님의 수행설화가 함께 전해져 내려온 안적사는
신라 30대 문무왕 원년(서기 661년), 원효스님에 의해 창건된 조계종 제14교구본사 범어사의 수사찰(首寺刹)이다.
전국에서 수선납자(修禪衲子)들이 구름 모이듯 하여 남방수선제일도량(南方修禪第一道場)으로
그 이름을 떨쳐온 안적사는 전시에는 호국도량으로,
평상시엔 선지식을 키워내는 정진도량으로서의 역할을 오랜 세월 일구어 내 왔다.
그러나 기장에서 가장 오래된 이렇게 유서깊은 안적사도
신흥 관광사찰에 현혹된 불자들이 집중화로 점차 쇠락해 가고 잊혀져 갈 뿐이다.
변방의 바닷가 마을의 작은 사찰이라고들 하지만 조사스님들이 창건설화나
그간 안적사를 거쳐간 큰 스님들의 행적을 되짚어 볼 때
그 사격이 영원히 빛을 발할 것으로 확신한다.
예전 노장스님네들은 그랬다고 한다. 절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들면 절이 절답지 못하게 된다고.
역시 절은 절 다워야 하고 수행자가 사는 곳 다워야 한다는 말씀이다.
재작년 열반하신 남곡당 덕명 대종사의 지론도 그러했다고 한다.
그것은 아무래도 숭유억불이라는 탄압에 가까운 조선왕조를 관통해 오면서
스님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일종의 응어리가 아닐까.
근 5백년동안 절 살림을 착취 당해오던 스님들의 그러한 의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덕명스님은 안적사에 근 30여년을 주석하면서 사찰을 다시한번 일으켰다.
안적사는 그래서 발목을 잡아 매어두는 묘한 매력이 있는 절이다.
해방 후 소실되었던 안적사는 이곳에 30년간 주석한 덕명스님의 원력으로 다시 대가람을 이루었다.
더우기 절을 절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수행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전통도량으로서 안적사는
이제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관람포인트
1.경내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안적사 옛 전각들의 자연초석(주춧돌)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연대는 미상이고 지정 문화재는 아니지만 형태나 크기면에서 안적사의 사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주차장에서 바로 종무소 쪽으로 돌아서 경내에 진입하지 말고 맨 처음 원통문 부터,
일주문, 천왕문, 경내로 이어지는 오밀조밀한 코스를 경건한 마음으로 걸어들어 가보길 권한다.
경내로 진입하는 동안 세진의 때를 말끔히 벗고 청정한 일심으로 부처님전을 참배하게 되는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3.대웅전에 봉안된 조선시대 삼존불을 체크해 보고 당시의 불상 조성양식을 파악해본다.
4.삼성각 뒤편 자그마한 부도 1기(보살 부도)앞 돌덩이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재미나는 얘기가 전해진다.
돌덩이를 돌리며 지극정성으로 한가지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소원이 이루어지면 돌이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사찰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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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적사 (安寂寺) |
전화번호 |
: |
051-532-7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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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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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내리 |
성보문화재 |
: |
9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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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적사 경내 |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인 안적사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내리 692번지 앵림산(鶯林山, 일명 장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승용차편
안적사는 해운대에서 송정터널을 지나 송정삼거리에서 기장 가는 국도를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삼양라면 공장이 나오는데
여기를 지나 신호등 앞에서 좌회전을 하면 제대로 접어든 것이다.
여기가 소정마을인데 마을을 지나 내동 방향으로 4.5km정도 비포장도로를 가다보면 인공저수지를 만나게 되고
계속 오르다 보면 안적 청정도량에 들 수 있다.
반면 동래 쪽에서 안적사를 찾아올 때는 충렬로타리에서 반송 쪽으로 가다 반송에서 반송우체국을 보고 일단 우회전을 하면
영산대 반송캠퍼스(옛 성심외국어대학)길이다. 가파른 길을 계속 오르다 보면 예비군 훈련장이 나오는데
여기를 통과해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구불구불 타고 3km정도 산길을 가다보면 안적사에 당도할 수 있다.
대중교통편
대중교통 편은 썩 좋지 않다. 택시를 타고 오르기도 힘들다.
단지 반송동에서 하루2번 운행하는 사찰소유의 셔틀버스만 운행할 뿐이다.
아직 사찰까지 도로가 놓여 있지 않아 조금은 불편하나 유서깊은 산사를 찾는 맛은 이보다 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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