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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프로그램 에야디야에 출연중인 코미디언 귀옥과 이기동 땅딸이 이기동을 기억하십니까?
이기동과 배삼룡은 ‘땅딸이 이기동, 비실비실 배삼룡’으로 불리며 1960~1970년대 코미디계를 평정했었다. 두 사람은 ‘배삼룡 이기동의 운수대통’, ‘배삼룡 이기동의 출세작전’ 등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영화에서도 호흡을 맞췄었다.
'배삼룡과 이기동'을 묶어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비쩍 마른 몸매의 나와 키가 작고 뚱뚱한 몸매의 이기동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한창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기동씨와 나는 차이가 꽤 나는 선후배 사이다. 그런데 이기동 씨는 달랐다. 그는 군예대가 아닌 정식 군인 출신이었다. 그것도 육군 장교로 제대했다. 그가 연예계 문을 두드린 것은 제대한 후였다. 군대에서도 깨나 끼가 발동했던 모양이었다. "선생님, 선생님"하며 쭈뼛쭈뼛 코미디 연기에 대해 물어보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는 장교 출신답게 머리가 좋았고, 재치도 있었다. 발 붙이기 쉽지 않은 연예계에서 전혀 다른 배경을 갖고도 성공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놀라울 만치 검소했다. 동료들은 농담 삼아 '짠돌이'라며 놀리기도 했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은 연예인에겐 계획적인 씀씀이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어서 은근히 부럽기도 했었다. 20여명과 함께 방송출연을 금지하자 이기동은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그를 더 이상 재기 하지 못하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대리점을 모집하고 계약금을 받았으나 요구르트가 나오지 않자 대리점 주인들이 이기동을 고소한 것이다..
또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에게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은 이미 지나간 한바탕 꿈이었는지 모른다. 1987년 4월 2일 간경화로 타계했다는 신문기사가 발표되었다.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가운 일이다.그의 유행어 '쿵따라 닥닥 삐약삐약'처럼 바쁘게 우리곁을 달려간 그의 족적이 지금 얼마나 남아있을까? 그는 이미 잊혀진 희극인이 되어있었다. 그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는 것이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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