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공간 ★/감동의글 이야기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털보아찌 2009. 3. 23. 21:50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난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 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 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할 거야

이때 나직이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백화점에 가서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살거야

잿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베이지빛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 빛 실크 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갈까...?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번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 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나 늙으면 그렇게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 아름다운 공간 ★ > 감동의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감동 이야기 ☆   (0) 2009.03.23
☆ 감동 이야기 ☆   (0) 2009.03.23
日本國會의 울음바다   (0) 2009.03.23
버려진 어느 어머니의 일기   (0) 2009.03.23
사/오십대여 !!   (0) 2009.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