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공간 ★/감동의글 이야기

♡ 다시새긴 믿음 ♡

털보아찌 2009. 3. 23. 21:53

  
퇴근길, 지하철 역 입구 한 귀퉁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을 보았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그 청년의 모습
이 너무 힘들어 보여 다가가 물었다.

“학생, 어디 아픈 데 있어요?”
“저…. 팔 한 쪽을 삔 것 같아요.”
청년은 고통스런 표정으로 한 쪽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얼른 병
원엘 가지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내 말을 듣고 잠시 머뭇
거리다 딱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지방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올라왔
는데 일이 잘 되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팔마저 다친 데다 붐
비는 지하철에서 지갑마저 도난당했다고 했다.

나는 친구 말만 믿고 서울로 올라온 청년도 그렇지만, 시골 청년의 지
갑마저 털어가는 서울 인심이 더욱 미웠다. 청년의 잔뜩 움츠린 모습
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그 청년에게 도움을 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지갑을 열었다.

차비 하라며 1만 원을 주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밥도 굶었을
것 같고 팔도 치료받아야 할 것 같아 3만 원을 더 꺼냈다. 청년은 몹
시 죄송해하면서 연락처를 알려주면 내려가는 즉시 돈을 부치겠다고
말했다.

나는 돈보다도 청년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전화번호를 일러주고, 조심
해서 돌아가라고 당부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청년은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 날 밤 나는 몹시 속이 상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믿었던 내가 바보
같았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나도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청년이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 때문에 불을 끄고 누워서도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에게 길거리에서 어려운 사
람을 만나도 절대 도와주지 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은
더욱 무겁고 답답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남편이 내게 물었다.

“당신 무슨일 있어?”
평소 남편은 쩨쩨하다 싶을 정도로 알뜰했다. 아무리 밖에서 늦는 일
이 있더라도 외식 한 번 하는 법이 없다. 그런 남편이라는 것을 알기
에 나는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4만 원을 주었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게 집요하게 물었고 나는 할 수 없이 모
든 것을 털어놓았다. 예상대로 남편은 “잊어 버려!”라고 하더니 자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일찍 출근했는지 집 안이 조용했다. 나는 출근
준비를 하다 화장대 위에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이 놓여 있는 걸발견했
다. 모두 4만 원이었다. 그리고 낯익은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여보, 난 그까짓 4만 원보다 그 일로 당신이 천사 같은 마음씨를 잃
어버릴까 봐 더 안타까워. 자, 이 돈은 당신의 따스한 마음씨를 되찾
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청년을 대신해서 내가 갚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