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리-갈빗살회>
부시리처럼 등이 푸른 물고기는 회맛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름기가 많고 살이 무른 등살까지 통째 회를 쳤을 때 이야기다. 낚시꾼들이 흔히 가슴살, 혹은 뱃살이라 부르는 육질이 단단한 부분만 발라서 썰어내면 부시리도 최고급 횟감에 뒤지지 않는다.
3~4년 전만 해도 부시리는 제주도에서 주로 이뤄지는 선상낚시나 원도권 갯바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물고기로 알려져 있었다. 어쩌다 가까운 낚시터에서 낚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시리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낚시터에서 부시리가 마릿수로 낚이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조금씩 세력을 넓혀온 부시리는 지난 해엔 결국 우리나라 전 바다를 석권하기에 이른다. 남해안은 말할 것도 없고 동해안과 서해안에서도 무차별적인 부시리의 폭격이 시작 된 것이다.
부시리는 최근 가장 주가가 오른 어종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남해를 가리지 않고 우리 나라 전역에서 활발하게 입질하며 파괴적인 손맛을 선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진만 80㎝가 넘는 대형급은 전문 장비가 아니면 낚아내기 어렵다. 갯바위에서 손맛 보기 알맞은 씨알은 50~60㎝급이다.
최근 몇 년간의 진행 상황으로 봐서 올 해 역시 부시리의 공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먼 바다에서는 미터급이 출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난류성 어종인 부시리가 갈수록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데 대해, 일각에서는 우리 나라 연안 생태계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우려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다수 낚시꾼들은 파괴적인 손맛을 자랑하는 부시리의 등장을 반기는 분위기다. 제주도 카고낚시나 지깅처럼 대물급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덩치가 지나치게 큰 부시리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갯바위에서는 쉽게 낚아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설사 낚아낸다고 해도 꾼들을 완전히 넉다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갯바위낚시 대상으로 가장 알맞은 씨알은 50~60㎝급이다. 이 정도 씨알이면 원줄과 목줄만 한 단계 높게 사용하면 1호 낚싯대로도 얼마든지 낚아낼 수 있다. 많은 꾼들이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손맛에 대해선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중치급 부시리들은 무리지어 다니는 게 보통이다. 밑밥을 뿌리면 발밑까지 떼지어 접근하는 일도 잦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부시리가 붙으면 어렵지 않게 마릿수 조과를 올릴 수 있다. 정신없이 손맛을 즐기다 보면 대형 쿨러가 순식간에 차버린다. 아무리 중치급이라고 해도 부시리는 다른 물고기에 비해 덩치가 월등히 크고 고깃살도 넉넉하다. 회로 먹을 경우 한 마리만 썰어도 장정 3~4명은 거뜬하다. 이처럼 덩치가 크고 쉽게 마릿수 조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부시리는 철수한 후에 푸대접을 받기 일쑤다. 손맛을 볼 때는 모르다가 나중에는 너무 많이 낚아내 ‘처치 곤란’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피크철인 여름~가을 사이에 민박집 냉동고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는 부시리를 발견하는 일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다낚시라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덕분이라 그렇지, 일반인들에게 부시리는 그렇게 만만한 물고기가 아니다. 대부분 ‘히라스(ひらす)’라는 일본 이름으로 잘못 부르고 있긴 하지만, 제법 비싼 물고기로 알고 있다. 실제로 횟집에서 부시리를 사먹으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낚시꾼들은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부시리를 ‘평가절하’하고 있는 셈이다. 조과가 부실해 횟감보다 입이 많을 때는 아무리 흔한 부시리라도 맛있게 먹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대로 배불리 먹고도 남을 정도로 횟감이 많으면 비싸기로 소문난 돌돔도 물릴 수밖에 없다. 부시리를 넉넉하게 낚았을 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기름기가 적고 육질이 단단한 갈빗살만 발라내 회로 즐기고, 나머지는 조림이나 구이를 해 먹는 방법이다. 등 푸른 생선이 대부분 그러하듯 부시리 역시 등 쪽은 살이 무르고 기름기가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통째로 포를 떠 회를 치면 전체적으로 회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육질이 단단해 씹히는 맛이 좋은 갈빗살만 따로 회로 장만하면, 여느 고급 어종 못지 않게 맛이 뛰어나다. 신나게 손맛을 즐겼다면 맛있게 먹어줘야할 의무도 있다. 그게 물고기에 대한 낚시꾼의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맛 없는 걸 억지로 먹을 순 없는 노릇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맛있는 부분만 골라 먹는 것이다. 부시리에 숨어있는 별미, 갈빗살을 발라내 회로 먹어보자. 최고급 어종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부시리-갈빗살회치기>
부시리 갈빗살 회를 장만하려면 먼저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다음 가슴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노란색을 띤 부시리의 측선을 따라 가슴부터 꼬리까지 마치 가위로 오리듯 잘 드는 회칼로 잘라낸다. 부시리는 회 치는 법이 간단하기 때문에 칼질이 서툰 사람도 쉽게 장만할 수 있다.
갈빗살만 발라낸 후에는 내장을 감싸고 있던 하얀 색 막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칼끝으로 잔 가시들을 말끔히 없애면 기본적인 장만이 끝난다. 포를 뜰 때는 껍질을 한 손으로 잡고 회칼을 비스듬히 눕힌 다음, 칼로 써는 게 아니라 껍질을 당긴다는 느낌으로 포를 떠야 한번에 깨끗이 떠진다.
포를 뜨는 과정에서 껍질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면 그 부분을 칼로 베어내야 한다. 이물질을 말끔히 없애고 나면 깨끗한 수건이나 주방용 휴지로 꾹꾹 눌러 물기를 완전히 닦아낸다. 그런 다음 먹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썰어내면 부시리 갈빗살 회가 안성된다. 회를 썰 때 너무 얇게 썰면 먹는 도중 쉽게 살이 물러져 맛이 없어진다. 다소 큼직하게 느껴질 정도로 듬성듬성 써는 게 좋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