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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청춘(영화주제곡)/최희준

털보아찌 2009. 2. 6. 21:49

맨발의 청춘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964년 2월 29일, 지금은 사라진 서울 광화문 아카데미 극장(현 조선일보 구 사옥)에서

한국영화 대박 행진이 시작됐다.

 

당대 최고의 스타 신성일-엄앵란이 주연한 비극적 사랑 영화

 맨발의 청춘(감독 김기덕).

 

 

 

한국 전쟁이 끝난지 10 여년.

4.19와 5.16 쿠데타를 겪으며

 여전히 가난했던 한국의 청춘들은

부잣집 딸과 뒷골목 주먹의 못 이룰 사랑과 죽음의 비련에 울음을 삼켰다.

 

 

 

영화는 이들의 가슴을 뒤흔들며 연일 매진기록을 세웠다.

 

서울에서만 21만명.

 

관객 1000만 시대를 맞은 오늘의 스케일로 바라보면

 주말 하루치 밖에 안되는 왜소한 기록같지만,

 당시 서울 인구는 350만명이었다.


 

 

김기덕 감독(사마리아의 김기덕 감독과는

 동명이인)의 <맨발의 청춘>은

 

일본영화 <흙탕 속의 순정>을 상당부분 베꼈다는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당시 한국 시대 정서에 딱 맞는 영화였다.

 

 

 

상영관도 단 한 곳. 엄청난 성공이었다.

 

그 히트는 광복후 한국 영화가

전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최초의 사건으로 꼽힌다. 

 

 

 

 

남주인공인 밀수조직 행동책 두수(신성일)는

부잣집 여대생(엄앵란)과 사랑하게 되지만

<신분>다른 남녀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의 철옹성같은 벽을 뚫지 못하고 함께 자살한다.


그것은 당시 5.16 군사정권 초창기, 7~8%의 높은 실업율로

 대표되는 전망없는 사회를 살아가던 관객들의 갑갑한 마음에

엄청난 공명(共鳴)을 일으켰다 

 

 

 

 

맨발의 청춘 개봉 당시를 지켜봤던 영화연구가 정종화씨는

 "관객들이 훌쩍이며 우는 소리가 극장안에 진동했다"며

 

 "일자리 없이 떠돌던 청년들은 극장에서 울려퍼지는 주제가

'눈물도 한숨도 나홀로 씹어삼키며…'에

가슴떨리는 카타르시스를 얻었다"고 회고한다.

 

여기 또하나의 공통점이 등장한다.

대졸 청년층의 실질 실업률이 21%선까지 육박하고 있는

오늘을 사는 <맨손의 청춘>들이다 

 

 

 

신성일, 엄앵란은 이 영화 후 결혼에 골인했다.

 

두수의 졸개로 나오는 트위스트 김은

 이 영화가 낳은 또 하나의 스타였다.

 

트위스트 김이 두수의 시신을 가마니로 덮어 리어카에 싣고가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초라한 가마니 아래 삐죽 나온 마른 맨발이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맨발의 청춘 - 최희준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그대를 태양처럼 우러러 보는           
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줄 날 있으리라

 

외롭고 슬프면 하늘만 바라 보면서    
맨발로 걸어왔네 사나이 험한 길       
상처 뿐인 이 가슴을 나홀로 달랬네   
내버린 자식이라 비웃지 마라           
내 생전 처음으로 바친 순정은          
머나먼 천국에서 그대옆에 피어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