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인호가 주인공 ‘경아’에게 보내는 편지
경아에게.
난 요즘도 가끔씩 원고지에 당신 이름을 크게 써본다.지금 살아있으면 환갑에 가까운 나이이건만 당신은 내게 여전히 스물여섯이다. 만약 요즘 젊은 사람이 당신을 부른다고 해도, 당신은 누님이 아니라 그냥 경아다. 일찍 죽었기 때문에 제임스 딘처럼 영원한, 내 젊은 날의 분신과도 같은 경아….
30여 년 전 당신 이야기를 쓰려 했을 때 난 목표가 있었다. 『죄와 벌』의 쏘냐, 『부활』의 카추샤, 토마스 하디 소설의 테스처럼 주인공 이름이 기억 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누구나의 가슴 속에 한번쯤 깃들였다 스러지는 요정 같은 여인을 그리고 싶었다. 살아있는 여인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가는 서울을 그리고 싶었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정치적으로 암울한 유신 독재시대에, 밤 11시30분이면 통행금지를 피하려 광화문에서 신촌으로 택시합승을 해야 하는 풍속을 그리고 싶었다. 도시 산업화가 막 시작된 때에 청바지를 입은 통기타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술 취한 아가씨가 이리저리 비틀대던 무교동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경아. 당신은 아주 작은 여자였다. 팔등신도 아닌, 책갈피에 꽂힌 덕수궁의 가을 낙엽처럼 영원히 보존된 여자였다. 당신은 한국의 한글세대 1기생이자 전업 작가인 내가 창조한 여인이 아니었다. 누구나 한번쯤 주머니의 손수건처럼 가지고 싶은 여인, 광화문 사거리에서 나눠준 전단지처럼 한번 알았다가 인사도 없이 헤어지는, 성인동화 속 아련한 여인이 바로 당신, 경아였다.
그런데 누가 당신을 호스티스라 부르고, ‘별들의 고향’을 호스티스 문학이라 부르는가. 비(非)체제주의자였던 당신과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퇴폐와 상업주의로 몰아붙이는 건가. 왜 당신이 호스티스인가. 그 시절 빨간 제복을 입고 술을 나르는 맥줏집 아가씨일 뿐, 술은 따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왜 예쁜 당신이, 26세 꽃다운 나이에 죽은 당신이 호스티스여야 하는가. 오히려 당시 반(反)체제주의를 외치며 당신을 호스티스라 매도한 사람들이 요즘 더 퇴폐적으로 변한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
경아. 이런 상상을 해본다. 당신이 지금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도시와 산업이 죽인, 여성을 성(性) 상품화한 남자의 이기심이 죽인, 당신이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니다. 당신은 살았어도 또 자살했을 것이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기에. 그래서 더 서글픈 내 젊은 날의 분신,
경아. 잘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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