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아침까지 견디던 나는 남편과 함께 급히 출산 준비물을 챙겨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분만실로 들어간 지 한 시간쯤 지나 도저히 나의 의지로는 참기 힘든 통증이 밀려오자 나는 그만 "아버지!"하고 소리를 질렀다. 잠시 뒤 간호사가 아기를 보여 주더니 "아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아버지와 가난한 생활을 해왔던 나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뒤, 고3때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문학 소녀였던 내게 일곱권이 넘는 회사 장부에 매달려 하루 종일 시달리는 삶은 너무 힘에 겨웠다. 스무 살 되던해, 참다 못한 나는 서울로 가서 공부하고 싶다며 아버지 앞에서 발버둥을 쳤다. 물론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 한사코 말리셨다. 아버지 곁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시집이나 잘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칠남매 중 막내딸인 나는 평소에 아버지와 사이가 각별했다. 내가 배 다른 자식이라 아버지는그렇게 세심히 신경을 써주시고 귀여워 해주신 걸까. 마침내 나는 큰오빠에게 뺨 한 대를 얻어맞고서야 여행 가방을 들고 서울행 기차에 몸음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객지 생활한 지 일 년이 되어 갈 무렵 세상은 결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비참하리 만큼 절실하게 느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데다가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서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동안 집에는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나 있었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몸져누우신 것이다.예전에 건장하셨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버지는 겨우 상체만 움직일 뿐 두 다리를 전혀 못 쓰고 수저도 제대로 못 들어서 손을 바르르 떠시기만 했다. 화가 난 나는 오빠를 탓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삶의 의지도 약해진 아버지를 모시고 소문난 한의사와 병원을 다 찾아다녀 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아버지, 한발 한발 떼어 보세요. 의사 말대로 아버지 스스로 건강을 회복 하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그랬잖아요. 네?" 그러나 아버지는 무릎에 힘을 주지 못한 채 온몸을 떠시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 옛날 서울에 살던 때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암으로 얼마 못 산다는 것을 주인 아주머니가 알 게 되던 날 아주머니는 바로 방을빼달라고 했다. 몹시 추웠던 겨울날 아버지가 나를 업고 어머니를 부축한 채 귀와 코가 벌겋도록 돌아다니던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나 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듯했다.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굳게 잡으며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으셨던 일도 생생히 기억났다. 장례식 다음날 밤에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동네 뒤쪽의 빈터로 가서는 어머니의 옷가지들을 불에 태우셨다. 어머니의 유품이 불길에 휩싸일 때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불길 너머에 서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소리없이 눈물을 삼키고 계셨다. 아버지는 늘그막에 홀로 막내딸을 공부시키느라 아파트 관리소에서 야간 경비 일을 하셨다. 월급날인데도 아버지가 용돈을 주시지 않자 나는 참고서 사야 된다고 막무가내로 떼쓰며 짜증을 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는 그날 밤늦게 1시간이나 걸어서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 분을 찾아가 돈을 빌려 오셨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른 채 아버지가 일부러 돈을 안 주시는 줄로만 알고 투정 부렸다. 그런 철부지였던 나는 어느덧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없이 예식을 치러야 하는 큰 아픔을 겪었다. 처음엔 몸이 아프더라도 결혼식에 꼭 가야 한다고 고집하시던 아버지가 결혼식날 아침 갑자기 가지 않겠다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당신의 초라한 모습을 사돈 앞에 보여서 내가 기죽는게 싫으셨다고 한다. 막내딸 결혼식을 얼마나 보고싶으셨을까. 결혼을 하고 나자 오빠는 나에게 숨겨 왔던 비밀 한 가지를 말해 주었다. "사실, 아버지가 저렇게 되신 것은 몇해 전 네가 서울 가겠다고 집 나갔던 일 때문에 ..." 그 예길 듣자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나는 제일 먼저 아버지께 외손자를 보여 드리고 싶어 찾아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고 말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셨다. 그때 방 한쪽에 종이 기저귀가 쌓인 것을 보자 결국 참았던 울음이 쏟아졌다. 그러나 "아버지,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만 울릴 뿐이었다. 어두운 방안에 꼼짝 않고 누워만 계시던 아버지의 손을 맞잡고 나는 기도를 올렸다. 전엔 종교같은 것은 소용없다며 뿌리치시던 아버지가 내맘을 아셨는지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그 모습을 보니 아들 빈이를 안고 남편과 함께 찾아뵈면 한없이 즐거워 하시는 아버지,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맘이 어떤 것인지 나도 아기를 낳고서야 조금 알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자식의 행복을 위해 아버지 당신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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