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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다리 축구스타 데니스 파커를 아시나요", WSJ 감동 기사

털보아찌 2009. 6. 13. 20:07

"외다리 축구스타 데니스 파커를 아시나요", WSJ 감동 기사

 


【뉴욕=뉴시스】

"그가 슛을 쏠 때는 마치 체조선수를 방불케 한다. 안마(pommel horse)의 동작처럼 목발에 의지한 채 시계추처럼 발을 흔들며 내지른다. 볼을 향할 때는 말달리듯 우아하면서 역동적인 동작으로 껑충껑충 뛰어간다. 마침내 골을 터뜨리자 그는 환희에 찬 춤을 추면서 동료들과 몸과 몸을 부딪치는 골세리머니를 펼친다."

그의 이름은 데니스 파커(33). 길을 가면 사람들은 그를 '대선수'라며 환호한다.

그러나 1년여 전만 해도 그는 '살인자'로 손가락질 받던 몸이었다. 14년에 걸친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내전에서 약물에 취한 채 살인하고 약탈했던 다른 소년병들처럼 그는 죽고 죽이는 전투 속에 발 하나를 잃었다. 한때 목발에 의지한 채 구걸하던 그는 하지만 지금 라이베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외발 축구스타중 하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7일(현지시간) 라이베리아의 소년병으로 징집돼 전쟁의 참화에 발 하나를 잃고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외다리 축구스타로 도약한 데니스 파커의 인생역전을 커버스토리로 소개,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라이베리아에 외다리축구연맹이 창설된 것은 2005년 말이다. 2003년 UN의 노력에 의해 라이베리아 내전이 종식됐을 때 인구 300만명의 이 나라에는 무장해제된 전사가 10만명이 넘었고 피폐한 나라 경제는 7만5000명의 제대군인들에게 직업을 찾아줄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것은 한쪽 발이나 팔을 잃은 상이군인이었다.

어렸을 적 전쟁에 내몰려 수족을 잃은 그들은 전쟁이 끝났지만 직업도 없었고 연금도 없었으며 불구를 내보이며 길에서 구걸하는 것 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급기야 300여명의 상이군인들이 로버트 테일러 전 대통령의 정당 본부를 점거하며 극한 투쟁을 벌인 것.

당시 데니스 파커는 점거농성의 전면에 있었다. 그가 전쟁의 불행에 빠진 것은 열여섯살 때인 1990년. 내전이 벌어지자 정부군은 그와 같은 소년들을 협박해 자원 형식으로 징집했다. 그들에겐 AK47이 지급됐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사탕수수로 빚은 술을 먹여 전투에 내보냈다.

"나는 그 총으로 적들을 죽였어요. 그러나 민간인에게는 총을 쏘지 않았지요…아니, 아니에요…어쩌면 실수로…"

그는 다른 소년병들처럼 상점과 가정에서 음식이나 의류, 돈을 약탈했지만 강간하는 것만큼은 거부했다. 1993년 어느날 라이베리아 통일운동의 소년병사들과 교전하다 오른쪽 정강이에 총을 맞았고 뼈가 으스러졌다. 아무런 약도 없이 픽업트럭에 실려간 그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오른발이 썩어들어갔다.

그는 발을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를 거부했지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결국 무릎 아래를 절단하고 말았다. 1994년 4월의 일이었다. 이후 길에서 카세트테이프를 팔아서 연명하던 그는 97년 테일러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무렵 게릴라 캠페인을 이끌던 상이용사회 대대로 소집돼 군에 복귀했다.

그러나 테일러 정권이 전복되고 UN의 평화유지군이 주둔하면서 다시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됐다. 그는 여자친구와 무려 7명의 아이를 부양하고 있었다. "두 아이는 자투에서 낳았구요. 나머지는 클레오와 메어리, 야타, 그베사이, 미르마에서 하나씩 낳았지요."

살길이 막막해진 상이군인들이 테일러 전 대통령의 정당 본부를 점거했을 때 파커는 이 그룹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거기서 그가 만난 이가 지금의 '외다리축구연맹(Amputees Football Federation of Liberia)'을 창설한 로버트 칼로 목사(43)였다.

칼로 목사는 "죽을 각오가 돼 있다"며 가장 호전적인 태도를 보인 파커와 그의 동료들을 "악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준비하자"며 다독거렸다. 정부와의 중재로 일인당 '30달러'의 보상금을 쥐어주고 농성을 풀게 한 칼로 목사는 이웃나라 시에라리온에서 '외다리 축구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유사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이들 상이용사들을 도울 길을 찾고자 했다. 파커와 몇몇 동료들과 힘을 합쳐 최초의 외다리축구클럽 '라이베리아 외다리 스포츠협회(LASA)'를 창설한 것이다. LASA는 2005년 12월 31일 시에라리온 클럽과 첫 친선경기를 가졌다.

외다리축구경기는 곧 세인의 관심을 끌었고 전쟁으로 수족을 잃은 많은 지원자들의 가세로 2월에는 5개팀이 토너먼트를 벌일 수 있었다. 미국 정부가 기부한 3만달러로 유니폼과 경기에 지장없는 튼튼한 목발을 만들었고 3월에는 브루어빌 영 인베이더스와 몬로비아 자이언츠 등 6개팀 150명의 선수들로 불어났다.

외다리축구경기 규칙은 일반 축구와는 약간 다르다. 골키퍼는 한 발과 한 팔을 잃은 사람이 해야 하고 골대 사이즈는 일반골대의 절반 크기다. 골키퍼는 성한 한쪽 팔로만 볼을 손대야 한다. 한편 필드 플레이어는 한 발이 없는 사람들로 쇠로 된 목발을 팔굼치에 부착한 채 나서야 하며 목발로 볼을 터치하면 핸들링으로 간주된다.

LASA는 외다리축구리그의 최강팀이다. 그중에서도 최고 스타는 데니스 파커. 그는 최근 싱코 마이티 콘쿼러스 팀과의 대결에서 5-2 승리를 할 때 해트트릭의 대활약을 펼쳤다.

축구는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비록 자잘한 벌이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시 외곽에 있는 월 5달러짜리 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그는 행복한 내일을 설계하고 있다.

외다리축구클럽은 내전의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화합과 축제의 장이 되고 있다. 외다리축구팀의 선수들은 한때 서로에게 총을 겨눴던 이들도 있다. 패인스빌 서바이버스 팀의 스트라이커 리차드 듀오(21)는 1990년 불과 4살의 나이에 마을을 습격한 정부군 병사가 휘두른 칼에 왼발을 잃었다.

한때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칼을 휘두르던 이들이 지금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부둥켜안은 채 승리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듀오는 "축구경기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고 인간의 본성을 일깨우게 했다. 우리는 화해할 시간이 됐으며 과거를 돌이켜 볼 필요가 없다"고 미소지었다. <사진=WSJ>
 

 

King Crimson 노래모음

01. Epitaph

02. I talk to the wind

03. Fallen angel

04. Cadence and cascade

05. Walking on air

06. one more red nightmare

07. Moonchild

08.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09. Ladies of the road

10. Islands

11. The great deceiver

12. Cir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