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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걸음걸음 눈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남덕유산으로 가는 길이 동화의 세상마냥 하얗게 변했다. 멀리 서봉도 햐얀 꽃잎으로 몸을 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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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저마다의 계절이 있다. 겨울철 눈꽃산행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산은 어떤 산일까. 산악동호인들은 첫째가는 눈꽃산행지로 덕유산을 손꼽는다.
상고대 핀 주목, 그뒤로 첩첩이 이어진 덕스런 능선, 능선을 감싸며 피어오르는 아침 운무…가히 한국 겨울산을 대표할 만하다. 그래서일까, 사진작가들이 자신있게 내놓는 눈꽃사진에는 덕유산 사진이 빠지는 일이 없다.
덕유산 일대에서도 눈꽃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 향적봉부터 남덕유산에 이르는 주능선이다. 건너편 산자락은 잿빛이라도 이곳 능선에서는 언제나 순백의 세계를 만날 수 있어 신비롭다.
명성에 걸맞게 남덕유산은 초겨울부터 일찌감치 눈꽃을 터트렸다. 지금 주능선에는 20~30㎝ 깊이의 눈길이 패이고, 머리 위로는 하얀 설화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번 산행은 ‘황점매표소~월성재 입구~마지막 계곡~월성재~남덕유산(1507.4곒)~바위봉~능선 삼거리~영각매표소~영각사’를 지난다. 일반 산행시간은 4시간 가량. 그러나 심설산행에서는 눈깊이에 따라, 날씨여건에 따라 산행시간이 달라진다. 심설이 깔려 있다면 5~6시간은 잡아야 넉넉히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
거창 군내버스정류장에서 황점행 버스를 타고 가다 종점에서 내린다. 종점상회에서 50여곒 떨어진 곳에 황점매표소가 보인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100여곒 더 들어가면 길이 꺾이는 모퉁이 오른쪽으로 흙길이 보인다. ‘월성재 3.7㎞’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이 월성재 입구.
경사가 거의 없는 산판길이 이어진다. 개울을 건너면 ‘덕유 08-01’이라 적힌 표지목이 있다. 이 표지목은 250~500곒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길은 뚜렷하지만 눈과 얼음이 뒤엉켜 걸음이 더뎌진다. 산판길은 ‘마지막 계곡’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약 40분간 느긋하게 올라간다.
산판길이 끝나는 ‘덕유 08-04’표지목 부근부터 급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미끄러운 산사면에는 로프가 설치돼 등반을 돕는다. 월성재까지 계속 치고 올라가야 한다. 마지막 계곡에서 월성재까지 1.6㎞에 불과하지만 시간으로는 한시간 가량 걸린다. 눈덮인 지금은 90분도 모자랄 수 있다.
하얀 능선과 파란 하늘이 금을 긋는 오르막 끄트머리가 월성재다. 계곡너머로 서봉이 솜털같은 하얀 고깔을 쓰고 있다.
월성재부터 남덕유산 정상까지 1.4㎞에 이르는 환상적인 설화능선이 이어진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눈꽃에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하얀 눈더미는 숫제 ‘동화의 세계’를 연출하고 있다. 원근감을 알수 없는 무채색 세상에 산꾼은 아예 몽롱해질 정도다.
그러나 이곳은 낭만만 있는 곳이 아니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찬바람이 거센데다 깊은 눈길에 체력소모가 심하다. 볼을 얼얼하게 만드는 강추위는 조금만 방심해도 금세 사위를 조여온다.
월성재부터 남덕유산까지의 길은 순탄하다. 첫 300여곒에 다소 급한 경사가 기다리고 있다. 경사는 잠시 죽었다 급해지기를 반복하면서 봉 두어개를 넘는다.
40여분이면 남덕유산 정상아래 안부에 다다른다. ‘덕유 01-46’표지목이 있는 안부에서 정상까지는 0.3㎞. 이곳은 삼거리다. 왼쪽 산사면을 따라 2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서봉을 거쳐 육십령으로 떨어진다.
정상에는 돌무더기가 산행객을 반기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가히 일품이다. 흰눈을 머리에 인 백두대간의 고봉들이 파도치듯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남쪽으로 내려다보면 공무원교육원이 보인다. 하산은 이쪽이다. 햇살을 받는 남쪽 사면은 주능선만큼 눈이 많지 않다. 돌부리 사이로 얼음이 짙게 깔려 내리 닫는 경사가 부담스러울 뿐이다.
아래로 떨어지던 능선은 암봉이 되어 다시 치솟는다. 초록색 페인트칠이 된 철계단이 바위봉을 에돈다. 아래로 떨어지던 철계단은 두번째 암봉에서 다시 걸터 올라선다. 두 암봉 사이에는 시멘트 구조물이 있다. 과거 구름다리를 받치던 지지대다.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거창행 버스를 탄다. 오전 7시가 첫차로 40~50분 간격으로 떠난다. 요금 1만1천6백원. 2시간 40분 소요.
거창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거창 군내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야 한다. 15분 정도 걸린다. 군내버스정류장에서 오전 7시10분, 9시30분, 11시에 황점행 버스가 있다. 요금은 2천2백원. 황점까지 약 50분 가량. 시내에서 황점까지 택시요금은 약 2만원.
부산에서 거창행 첫차나 두번째 차를 타면 오전 11시 황점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영각사에서는 오후 4시45분, 6시15분께 함양행 버스가 지나간다. 요금 3천원. 1시간 15분 소요. 함양에서 진주행 버스는 수시로 있다. 요금 4천1백원. 진주에서 부산은 밤 9시10분이 막차. 요금은 4천9백원.
떠나기 전에
심설산행은 아름다운 만큼 위험요소도 크다. 특히 정상에는 날씨변화가 심해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애를 먹기 십상이다. 이번 산행코스는 두가지를 고려했다. 하나는 눈이 많이 왔을 때라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가장 뚜렷한 길로 선택했다. 두번째는 체력소모가 심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가장 짧은 코스를 택했다. 여건이 좋아 산행을 더 이을 수 있는 사람들은 황점~삿갓골~삿갓골재로 주능선에 오른뒤 삿갓봉을 거쳐 월성재로 이어가도 된다. 매표소 직전 오른쪽 마을길을 따라가면 삿갓골로 들어설 수 있다. 이 경우 산행시간이 2시간(일반 산행 기준) 가량 더 늘어난다. 산행전 남덕유분소(055-943-3174)에 문의한 뒤 남덕유산 주변의 상황을 예측하도록 한다. 스패츠, 아이젠, 오버트라우저, 오버재킷, 덧장갑, 헤드랜턴 등은 필수다.
/ 이창우 산행대장 · www.yahoe.co.kr / 문의 만어산장 245-7005 - 국제.02.1/9 - 다시찾는 근교산 <2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