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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섬, 황옥공주, 최치원, 해운대 석각

털보아찌 2009. 2. 22. 10:13

♧ 해운대에 위치해 있는 동백섬 - 최치원 동상, 황옥공주 인어상

 

동백꽃남해안에는 동백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동백섬'이라 이름 붙여진 섬들이 여러군데 있는데, 이곳 해운대 동백섬에도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고, 특히 겨울철에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어 꽃방석을 이루었고, 게다가 바다, 구름, 달, 산과 함께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객군들이 그렇게 이름을 불러왔다고 한다. 부산기념물 제46호('99. 03. 09)로 지정되어 있는 동백섬은 해운대해수욕장 서쪽, 조선비치호텔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산과 그 일대 지역을 일러 부르는 말이다.

 

옛날에는 이곳이 섬이었으나, 장산폭포를 흘러내린 물과 좌동 동쪽 부흥봉에서 내려온 물이 합류한 춘내(春川)가 좌동, 중동, 우동 지역의 충적평야의 모래를 실어 내려서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陸繫島 : 모래톱으로 육지와 이어져 있는 섬)이다. 이곳에는 신라말기의 유학자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시비, 누리마루, 동백공원, 황옥공주 인어상, 해운대 석각 등이 자리잡고 있다.

1948년 이후 군부대 통제하에 있던 동백섬은 누리마루에서 APEC 정상회의가 개최되면서, 군 초소 16곳이 모두 철거되었고, 마침내 56년만에 섬 전체가 일반인들에게 완전 개방되었다. APEC을 치루면서 동백섬 일주로가 친환경적 목재로 바뀌고, 차로는 우레탄 포장을 하여 부드럽고 탄력감이 있어 산책이나 조깅을 하기에 적합하고, 최치원 선생의 시비가 있는 정상까지 오르는 길도 숲 속으로 오솔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 산림욕이나 데이트를 하기에도 적절한 곳이다.

 

 

최치원선생 기념비 해운대 석각 황옥공주 인어상 동백섬 앞바다 동백섬 일주로
 
 

§ 최치원(崔致遠, 857 ~ ?)

조선비치호텔 후문쪽에 가면 최치원(慶州崔氏의 시조. 자는 孤雲·海雲) 선생의 기념공원에 올라가는 입구가 있고, 숲이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5분정도 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한다. 선생은 新羅 헌안왕(憲安王) 첫해 서기 857년 경주 南川가에서 태어나서,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 18세에 과거에 등과하여 표수현위(漂水縣尉)가 되고 25세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 황소를 치기위해 지은 격문)을 지어 中原 문단을 흔들고, 승무랑시어사 벼슬과 자금어의(紫金魚衣)를 하사 받아 외국청년으로서 큰 영광과 기염을 토했다.

28세에 고국에 돌아와 시독겸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가 되었다가 질투를 입어 泰仁, 咸陽 등 여러 고을 太守로 나돌면서도 명문과 명시를 많이 남겼다. 37세에 정치의 급선무를 아뢰어 아찬(阿飡)의 직위를 얻었으나 기울어가는 국운을 구할길 없어 벼슬을 버리고 40세로 방랑의 몸이되어 전국 여러곳을 돌아다녔다. 마지막엔 처자를 이끌고 합천 가야산으로 들어갔으나, 갓과 신발만을 숲속에 남긴채 가신곳을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 동백섬 정상 최치원 선생 기념비에서 -

산, 바다, 물, 계곡이 좋은 남해안 곳곳에는 최치원과 관련된 고사가 많이 살아있다. 여기 해운대는 물론, 신선대, 양산의 임경대, 마산의 월영대, 김해의 청룡대, 삼천포의 남일대, 가야산 해인사, 지리산 쌍계사 등이 그곳이다. 많은 꿈과 희망을 갖고 고국에 돌아온 훌륭한 지식인이 암울한 시대에 좌절하고 이곳저곳에서 방황하면서 마지막 인생을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황옥공주
조선비치호텔 정문 쪽에서 3분 정도 길을따라 올라가면, 넓디 넓은 큰 바다를 바라보며,파도와 외롭게 싸우고 있는 황옥공주 인어상이 나타난다. 하늘이 열린지 얼마되지 않은 아득히 먼 옛날에, 현재 해운대 일대에는 '무궁'이라는 작은나라가 있었고, 하늘의 은혜를 입고 황금알에서 태어난 '은혜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임금의 결혼을 위해 신하들이 왕비를 찾고 있던 중에, 멀리 바다 건너 인어의 나라 ' 나란다 '의 황옥공주가 나타났고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고국이 그리운 황옥공주는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이곳 바닷가에 나와 수정나라(나란다의 큰집 나라) 외할머니가 주신 황옥보석에 비친 '나란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애절하고 신비로운 전설의 황옥공주는 이곳 동백섬에서 부산시민과 함께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 주변 이야기

황옥공주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1974년에 처음 인어상을 만들었으나 1987년 태풍에 유실되었다. 1989년 2월에 높이 2.5M, 무게 4T의 청동좌상을 이 곳 동백섬 해변에 설치하였다. 예전의 인어상보다 규모가 더욱 커졌고, 백사장 오른쪽 가까이 있어서 찾아가기 쉽다.

 

또한 인어상 주변에는 크고작은 바위들이 즐비해 있고, 여기에서 고기들이 잘 잡힌다고 하여 항상 강태공들로 분비는 곳이기도하다. 이곳 인어상에서 등대쪽으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최치원 선생이 음각했다는 '海雲臺'란 글자도 찾아 볼 수 있다. 저 멀리 바다에는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가 가물가물 눈에 들어오고, 시야를 오른편으로 돌리면 광안대교의 웅장함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