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대골이란 이름의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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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수영로터리나 광안리해수욕장 주변에는 '장대골 4거리', '장대골 입구' 등과 같이 '장대골'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많이 붙어 있다.
지금 현재 '장대골'이라는 동네 이름을 증명할만한 흔적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지만, 수영중, 동아중, 호암초등학교 일원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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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로터리와 팔도시장 인근에 있는 수영사직공원은 조선시대에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성이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평산성(平山城)이었기 때문에 왜구들의 동태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적군의 동태를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한 관측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바다가 잘 보이는 민락동 백산(배산 : 부산MBC 뒷산)에 첨이대(覘夷臺 : 오랑캐 활동 관측소)와 광안동 토산(광안2동)에 망경대(望鏡臺 : 밝고 맑게 보이는 곳)를 설치하여 왜군들의 활동을 관찰하였다. 이상한 징후가 발생했을 때는 나발이나 깃발을 이용하여 중간 연락소인 지휘소에 이를 연락했다.
수영의 수군절도사 남문에서 5리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던 지휘소에서는 돌을 쌓아 장수의 지휘대를 만들어서 첨이대와 망경대에서 오는 신호를 관찰하였고, 평상시에는 군사들의 훈련을 지휘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또, 매년 10월 1일에는 무술시험도 개최, 수군절도사 명의의 합격증을 발급하여 선달(先達 : 간부후보자)이라는 직책을 부여하는 장소로도 사용하였지만, 간혹 이곳에서 중죄인들을 처형하는 사형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장대골은 장수의 지휘대가 있었던 골짜기라는 뜻이다. 지금 현재 장대는 남아있지 않지만, 자모병원 뒷편, 수영중학교, 동아중학교, 호암초등학교가 있는 광안4동 일원을 장대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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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장대골에는 '수영(광안) 장대 순교 성지'가 있는 곳이어서, 천주교 신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그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말, 정부의 천주교 탄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8명의 천주교인들이 이곳 장대에서 군문효수형(목을 베어 군영에 매다는 형)으로 처형당한 곳이다.
1868년 음력 8월 4일 이정식(요한), 그의 아들 이관복(프란치스코), 며느리 박소사(마리아), 조카 이삼근(베드로) 등 일가족 네 명, 그리고 그의 대자(代子) 양재현(마르티노)과 차장득(프란치스코), 이월주(야고보), 옥소사(발바라) 등 모두 여덟 분이 이곳에서 천주의 사랑과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이겨내다가 순교하였다.
1977년 7월 17일 광안성당 안달원(베드로) 신부에 의해 장대석 8개, 기와조각, 동전 등이 발굴되면서 이 사실이 확인되었다. 1987년 6월 부산교구 광안성당 교우들의 성지조성 헌금으로 대지를 매입하였고, 1988년 7월 부산교구 현양 위원회가 성역화에 착수하여 '장대골 순교 성지'가 조성되었다. 2004년 7월 광안성당 박유식(안드레아) 신부에 의해 십자가 및 십자가의 길 14처 등 성물을 설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순교자 이정식, 이관복, 박소사, 이삼근의 묘지는 1977년 9월 19일 부산 금정구 부곡동 산 15-1에 있는 '한국 순교자 기념관' 뒷동산에 이장하였으나, 그 외 네 분의 무덤은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기념비만 세워두고 있다.
성지 가까이에 접근해서 그 분들의 넋이라도 기리고 싶었지만, 평상시 성지 관리를 위해 출입문이 잡겨져 있어서, 멀리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와야만 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 본인으로서는 출입이 안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 이 블로그에 실린 모든 내용은 '장대골', '장대골성지'의 안내문과 수영구청 홈페이를 참고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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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기
지하철 2호선 : 광안역 6번 출구 → 수영중학교 → 동아중학교 → 호암초등학교(장대골) → 광안4동 체육공원 → 장대터
지하철 2호선 : 광안역 6번 출구 → 수영중학교 → 동아중학교 → 호암초등학교(장대골) → 장대골 순교 성지
시내버스 : 수영중학교 앞에서 하차(20, 38, 39, 42, 51-1, 81, 131, 139, 155, 1001, 1003 번) | |